지난 5일 노벨문학상을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 열풍이 국내 서점가에 불고 있다. 이시구로의 소설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며 시중에 나온 그의 작품집 재고가 바닥났다. 출판계에서는 “2010년대 수상자 작품집 중 판매량이 최고점을 찍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8일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이시구로의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틀만인 7일에 일일 베스트셀러 1, 2위에 각각 올랐다. 이시구로의 책은 수상 전 1주일간 판매량이 6권에 불과했지만, 수상 직후 3일간 2,616권이 팔렸다. 수상 전 1주일 대비 436배 상승했다. 2010년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수상 후 3일간 가장 많이 팔리는 기록도 세웠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판매량 순위(발표 후 3일 동안)
※자료: 예스24(2010년 이후 수상자 대상)
다른 서점도 ‘이시구로 특수’를 맞고 있다. 김현정 교보문고 마케팅지원실 브랜드관리팀 직원은 “수상 발표 후 3일간 이시구로 저서가 2,200부 판매됐다”며 “영업점 재고가 전부 소진됐는데 연휴라 출판사에서 도서 수급이 안 될 뿐더러 예약이 많은 상황이라서 연휴 끝난 후 택배 물량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11일부터 판매량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 도서 역시 ‘남아 있는 나날’이 8일 기준 일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이시구로의 단독 저서 8종 중 7종을 출간한 출판사 민음사는 수상 발표 다음날인 6일 7종을 모두 증쇄했다. 허주미 민음사 해외문학팀 과장은 “연휴라 인쇄 물량을 늘리는 데에 한계가 있어 대표작인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는 각각 1만부, 나머지 도서는 5,000부씩 증쇄했다”며 “이야기가 강하고 문체가 감성적이라 대중적 반향도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해외 순소설 마니아를 3,000명으로 보는 국내 출판계에서 이시구로의 대표작인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는 각각 누적 발행부수 1만부를 넘겼다. 민음사 편집장 시절 이시구로의 작품들을 2000년대 후반부터 소개해온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이시구로는 삶의 온갖 비극과 회한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장 대표는 “삶에 대한 긍정성이 있어 보편적 설득력을 갖기 때문에, 이번 상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면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시구로는 30여년 동안 장편 7편, 단편집 1권을 출간한 과작의 작가다.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믿을 수 없는 주인공의 회상’이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제1ㆍ2차 세계대전 등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소설에 등장시키지만, 역사에 대한 직접 개입을 자제한 채 인간성 회복에 초점을 둔다.
이시구로는 역사소설(‘창백한 언덕의 풍경’), 추리소설(‘남아있는 나날’), SF(‘나를 보내지마’), 판타지소설(‘파묻힌 거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의 상실을 유려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 가수 밥 딜런을 수상자로 선정해 곤혹을 치른 한림원이 ‘전통으로 되돌아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문학 외연을 확장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동시에 다양한 취향의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찾을 가능성도 크다.
이시구로의 소설 8편이 모두 국내 번역돼 2010년대 수상자 중 최고 판매 부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14년 노벨상 수상 후 1년 간 작품집 판매신장률이 66배를 기록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경우 수상 당시 국내 번역서는 ‘어두운 상점의 거리’와 청소년 소설 ‘우리 아빠는 엉뚱해’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뿐이었다. 2013년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의 경우 발표 당시 대표작이 대부분 번역돼 판매신장률이 1,262배를 기록했지만, 단편소설 작가라는 점에서 대중성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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