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란 희소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동체의 가치 있는 것들의 배분에 관한 규칙을 정해나가는 과정이다. 그 규칙의 권위는 궁극적으로는 그 규칙의 적용을 받는 공동체 구성원 각 개인들의 정치적 위임에 정당성의 근거를 둘 수밖에 없다. 정치과정을 이렇게 이해할 경우, 그 과정을 거쳐서 도출된 정치적 합의로서의 법률과 정책은 그 적용대상인 가치의 배분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각 개인과 이익집단이 최선을 다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는 노력의 균형점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어느 사회의 정치과정이 충분히 성숙돼 있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각 개인의 선호를정치과정에 정합적으로 반영할 제도적 장치가 완전하게 작동한다면, 그 정치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은 정치적 효율성이 달성된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시장기능이 원활하게 작동을 하고 있는 상태라면, 마찬가지로 희소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상품의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시장참가자인 각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시장메커니즘을 통해 그 사회전체의 합리적 선택으로서 경제적 효율성이 달성된 자원배분 상태에 이르게 된다.
물론 우리는 경험을 통해 현실의 정치과정과 시장메커니즘이 이론이 전제한 성공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실패한 정치과정과 시장메커니즘은 각각 정치적 효율성 혹은 경제적 효율성과 괴리가 있는 자원배분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장실패 또는 정치의 실패를 극복하고 교정하기 위한 노력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략은 알고 있다.
문제는 실패하지 않음을 전제로 정치적으로 지향되는 정치적 효율성의 내용이 시장에서의 경제적 효율성과 서로 괴리를 보일 경우이다. 과거 국가가 그 존재목표로서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만족 혹은 행복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지향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는 그 다른 어떤 것으로서 윤리적 가치 혹은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고 달성하는 게 정치의 목적이었으므로 그 정치과정을 통해 도출된 정치적 균형점은 시장에서 달성될 수 있는 경제적 효율성과는 체계적으로 괴리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국가에서 국가의 목표가 개인의 일상과 시장에서 추구되는 가치와 얼마나 독립된 것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떤가. 자원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분배를 둘러싸고 시장참가자로서 국민의 합리적 선택과 다른 내용이 정치적으로 선택되고 있다면, 그것은 시장실패의 상황을 전제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될 것인가, 아니면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국민이 시장참가자로서 선택에 임하는 경우와는 체계적으로 다른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 다른 가치의 내용은 무엇인가.
정치과정에서 흔히 추구되는 정의는 가치의 결과적 배분의 균등(equality)인가, 아니면 가치생산과 분배 과정에서 각자의 기여에 따른 정당한 몫의 배분으로서의 공정(fairness)인가.
검증된 성장이론으로서 투자와 혁신으로 인한 경제주체의 소득 증가와 그에 따른 국부의 성장이 아니라, 더 많이 걷은 세금의 배분과 최저임금의 파격적 인상에 따른 가계소득 증가가 최종적 국부의 증가로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정치적 선택이 우월적으로 합의되었다면, 이는 단순한 정치과정의 실패로 볼 것인가 아니면 우리 정치과정이 일반적인 경제학 이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경제적 효율성과는 다른 어떤 상태를 정치적으로 합의하고 그것이 정치적 효율성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 국민들이 살게 될 대한민국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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