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5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 수입으로 자국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판정한 가운데 과거부터 이어진 삼성ㆍLG와 미국 가전업체 월풀 사이의 무역분쟁이 주목 받고 있다.
월풀은 미국, 유럽 등을 주요 시장으로 하는 세계 최대 가전업체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대형가전에서 점유율을 높여가자 덤핑조사 요청 등 삼성과 LG에 지속적으로 견제구를 던져 왔다. 이번 ITC의 판정도 월풀이 최근 제기한 세탁기 세이프가드 청원에 따른 결과다.
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월풀은 2011년 4월에도 한국산 ‘하단냉동방식 냉장고’에 대해 덤핑 조사를 의뢰한 바 있고 같은 해 12월에는 가정용 세탁기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냉장고에 대해서는 ITC가 자국 내 산업의 피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 조사가 종결됐다. 가정용 세탁기는 두 회사 제품이 정부 보조금과 덤핑으로 저가에 판매되고 있다고 판결해 2013년 1월 삼성전자와 LG전자 수출 물량에 대해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정부 보조금에 대한 관세)를 각각 부과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기한 상소심에서 승소하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월풀이 중국산 세탁기에 대해 덤핑 제소를 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서 생산되던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도 반덤핑 관세 판정을 받았지만 두 회사는 생산 거점을 베트남, 태국 등으로 옮기는 식으로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월풀은 2008년 LG전자를 상대로 냉장고 기술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송은 LG전자의 승소로 끝났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질긴 악연’이 월풀의 위기의식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월풀은 특히 미국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였지만 지난해 삼성전자에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 대형가전 점유율 1위를 빼앗긴 뒤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금액 기준으로 삼성전자 점유율은 18.7%를 차지했다. 월풀이 18.5%, LG전자가 16.5%로 조사됐다.
이날 나온 ITC의 세이프가드 판정도 월풀이 지난 5월 삼성 LG 등이 반덤핑을 회피하기 위해 중국 등으로 공장을 이전했다며 조사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세이프가드는 덤핑 등 불공정 무역행위가 아니더라도 특정 품목 수입이 급증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볼 경우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다.
ITC가 “자국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판결을 내놨지만 바로 수입 제한 등 조치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최종 결과는 11월 말 확정될 예정이다. ITC는 우선 이달 19일 ‘구제조치’ 공청회를 개최한 뒤 내달 투표를 거쳐 구제조치 방법과 수준을 결정하는데, 구제조치에는 관세 부과 및 인상, 수입량 제한, 저율관세할당(TRQㆍ일정 물량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 등이 포함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측은 ITC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세이프가드 발효 시 미국 유통과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두 회사는 향후 절차에서 우리 정부와 업계 단체 등과 함께 세이프가드 부당성에 관해 적극 소명할 계획이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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