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는 현대 영미 문학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2008년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명단에 32위로 올려놓을 정도로 영국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아버지가 영국국립해양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일본을 가본 적이 없었지만 이시구로는 모국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태어나기 9년 전 일어난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그의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시구로는 1982년 영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시구로는 영국 켄트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대학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82년에 발표한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A Pale View of Hills)으로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주목 받았다. 1986년 작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An Artist of Floating Worldㆍ‘떠도는 세상의 예술가’로도 국내 출간)’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았고,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1989년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s)’이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소설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앤서니 홉킨스, 에마 톰슨이 출연하는 동명영화(1993년)로 만들었다.
이시구로 소설 속 주인공들은 회상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 전쟁으로 인한 상실감 등을 극복하려 한다. 그의 소설은 왜곡될 수도, 잊혀질 수도 있는 기억의 여러 가능성을 다룬다. 일본인 주인공인 에츠코와 오노의 기억을 통해 나가사키, 히로시마 원폭 투하 같은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과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소설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역사를 다루기 보다, 이런 상황을 두 인물들이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촘촘한 심리 묘사로 그려낸다.
이시구로의 소설은 독특한 언어 사용 방식으로 비평가들의 논쟁을 부르기도 했다. 그는 각각의 작품에 어울리는 영어의 형식을 만들어 번역소설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부유한 세상의 예술가’에 일본어 억양이 가득하다면, 카프카적인 소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The Unconsoled)’는 체코어를 번역한 느낌을 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종신회원 사라 다니어스는 “이시구로의 문장은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과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섞은 듯한데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요소까지 가미돼 있다”고 말했다. 다니어스는 “그의 작품 중 ‘파묻힌 거인’을 가장 좋아한다”면서도 “‘남아 있는 나날’은 P. G. 우드하우스의 소설처럼 시작해 카프카 작품처럼 끝나는 진정한 걸작”이라고 덧붙였다.
‘남아 있는 나날’은 한 영국 귀족의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남자 스티븐스의 6일간의 여행을 통해 1930년대 영국의 격동기를 그린다. 하지만 역사소설은 아니다. 작가는 스티븐스의 가족과 연인, 그리고 30여 년간 모셔온 옛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특히 인생 황혼에 깨달아버린 잃어버린 사랑의 허망함과 애잔함을 내밀하게 써내려 가며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이 소설에 대해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는 “‘남아있는 나날’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우리 계층 사회의 가치 체계를 파괴한다”고 호평했다. 이시구로의 친구이기도 한 루슈디는 “그는 기타를 잘 치고 가사도 잘 써 밥 딜런 정도는 쉽게 이긴다”고도 밝혔다. 지난해 스웨덴 한림원은 미국 가수 밥 딜런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해 논란을 불렀다.
현대 영미문학의 표본 같은 작가이지만, 영국 방송 채널 4에서 1984년에 방영된 ‘아서 J 맨슨의 프로필(A Profile of Arthur J. Mason)’ 과 1986년에 방영된 ‘미식가(The Gourmet)’의 대본을 쓸 만큼 대중적 감각도 갖추고 있다.
1995년에 문학에 대한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다. 1901년부터 시상한 노벨문학상의 상금은 900만 크로나(약 12억6,000만원)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2000년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