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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 잡고도 ‘억대 돈뭉치’ 못 찾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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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 잡고도 ‘억대 돈뭉치’ 못 찾을 뻔

입력
2017.10.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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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은 돈 없으면 영세업체 부도위기

검사와 수사관 끈질긴 수사와 설득 끝에

범인 “뒷산 소나무 뿌리 밑에 묻어” 실토

피해업체 “너무 고맙다” 검찰에 감사편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7월 검사와 수사관들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부산 서구 아미산 꼭대기로 향했다. 소나무 뿌리를 파냈더니 비닐봉투에 쌓인 5만원 지폐뭉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둑 맞은 억대의 현금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검사와 수사관이 아미산 소나무를 찾기까지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절도범 A씨는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공단에서 훔친 돈을 다 써버렸다”고 잡아 떼는 바람에 검찰이 돈의 행방을 추적하는데 애를 먹었다. 피해 회사는 절도범은 검거했지만 돈은 찾지 못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해 있었다. A씨가 이대로 옥살이를 마치면 숨겨둔 돈을 찾아갈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절도범이 땅 속에 묻어 놓은 1억원대 돈뭉치. 부산지검 서부지청 제공.
절도범이 땅 속에 묻어 놓은 1억원대 돈뭉치. 부산지검 서부지청 제공.

수사의 끝은 돈의 행방 찾기

돈의 행방과 관련한 증거를 찾는 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인근 폐쇄회로(CC)TV와 고속도로 톨게이트 출입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A씨는 범행 전 열흘간 새벽마다 자신의 집에서 20㎞나 떨어진 공단을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피해 회사의 인근 공장 16곳에서도 도난 신고가 접수됐지만 A씨는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의심할 정황은 많았지만 A씨가 피해 회사에 출입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A씨는 범행 전후 열흘간 자신의 행적에 대해 “밤낚시를 하러 다녔다”고 주장했지만, 현장검증 결과 A씨가 지목한 저수지는 낚시를 할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뻔한 거짓말이 이어지자, 검찰은 집요하게 A씨가 거쳐간 장소를 추적했고 마침내 5만원 지폐 꾸러미 일부를 찾아냈다. 피해 회사가 거래하던 은행 이름이 적혀있던 띠지는 A씨 범행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은닉한 돈의 출처를 찾는 작업이 활기를 띠었지만, 발견된 돈은 수백만 원에 불과했다. 피해금액 중 1억7,000만원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검찰은 A씨 모친과 누나의 주거지, 누나가 운영하는 식당 등 4곳을 압수수색 했지만, 여기서도 훔친 돈뭉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A씨가 열흘간 다닌 장소를 모두 추적해 샅샅이 뒤졌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 사이 구속기간 20일이 만료되며 A씨는 재판에 넘겨졌으며, A씨로부터 회사 자금을 도난 당한 영세한 철강유통업체는 부도 위기에 놓였다.

절도범이 숨긴 1억원대 돈뭉치를 찾기 위해 검사와 수사관들이 지난 7월 부산 아미산에 오르고 있다. 부산지검 서부지청 제공.
절도범이 숨긴 1억원대 돈뭉치를 찾기 위해 검사와 수사관들이 지난 7월 부산 아미산에 오르고 있다. 부산지검 서부지청 제공.

“검사님ㆍ수사관님 감사합니다”

이 사건을 수사한 부산지검 서부지청 정지은(41ㆍ연수원 34기) 검사와 김옥정(53) 수사관은 범인검거에 만족할 수 없었다. 돈을 찾아서 돌려주는 게 수사의 끝이라고 봤다. A씨 모친과 누나를 설득해 구치소에 수감 중인 A씨가 자백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가족의 회유에 마음이 움직인 A씨는 돈뭉치를 숨겨 놓은 곳을 털어놨다. “어릴 적 살았던 집 뒷산에 숨겨뒀어요. 산꼭대기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뿌리 밑에 깊이 파묻어 뒀습니다.”

땅 속에 묻혀있던 돈을 되찾게 된 피해 회사 직원들은 검찰에 감사함을 드러냈다. 이 회사 직원 이모씨는 검찰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솔직히 거의 포기한 상태였고 우리나라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도 떨어져 있었다”며 “그런데 땅 속에 묻혀있던 돈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검찰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정지은 검사는 “피해 자금은 소규모 회사가 어렵게 마련한 돈이라서 이를 되찾지 못하면 직원 수십 명이 실직할 수 있는 딱한 상황이었다”며 “통화내역 분석, 범행 이후 이동경로 추적, 현장검증, 압수수색에 피의자 가족까지 설득한 끝에 피해 금액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검찰이 부산 아미산 꼭대기 소나무 뿌리 아래 흙을 파내자 묻혀있던 돈뭉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지검 서부지청 제공
검찰이 부산 아미산 꼭대기 소나무 뿌리 아래 흙을 파내자 묻혀있던 돈뭉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지검 서부지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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