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으로 세운 나라’ 미국, 총기규제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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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으로 세운 나라’ 미국, 총기규제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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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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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호주 시드니의 한 총기 상점에서 판매상 로런 운가리가 무기를 점검하고 있다. 호주는 1996년 강력한 총기 규제를 도입하고 반자동소총ㆍ산탄총 수거정책을 펼쳐 자살율과 살인율을 급격히 낮추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팀 피셔 전 호주 총리는 “호주의 성공사례가 라스베이거스 사건 이후 미국 정치인들의 반면교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드니=AP 연합뉴스

지난 1일 발생한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해묵은 총기규제 논란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규제를 꾸준히 추진해 온 민주당은 물론 서구 언론도 총기 규제 입법이 실제 도입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인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공화당이 의회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하고 있고, 미국인의 여론도 여전히 미국 수정헌법 제2조에 근거해 총기 개인 소유를 옹호하는 쪽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3일(현지시간) 2012년 코네티컷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사건 발생 직후 총기규제 입법을 주도했던 조 맨친(웨스트버지니아ㆍ민주당) 상원의원은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지금 총기규제 입법을 거론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상식이 우세해지고, 다른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현재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당내에서 그나마 급진적인 축에 속하는 다이앤 파인스타인(캘리포니아ㆍ민주당) 상원의원은 소위 ‘범프스톡’이라 불리는, 반자동 소총을 사실상 자동화하는 기능만이라도 제한하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조차 이처럼 총기규제에 미온적인 이유는 현실적으로 의회 상ㆍ하원과 행정부를 모두 공화당 측이 장악한 상황 때문이다. 그나마 ‘표’에서 자유로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총기규제 반대운동의 배후로 알려진 전미총기협회(NRA)를 직접 겨냥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당 일각의 총기규제 논의에 맞서 “학살을 바로 정치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손에 피를 묻힌 유일한 인물은 사격범”이며 “지금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몰아붙일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때가 되면 총기 정책에 대해 의회가 논의할 것”이라고 발언해 공을 의회로 넘겼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아직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인데 입법적 해결책을 논할 것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미국의 유명 방송 진행자 지미 키멀은 2일 저녁 자신이 진행하는 ABC '지미 키멀 라이브'에서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을 언급하다 울먹이며 “의원들의 행동”을 호소했지만, 의회가 그의 눈물에 응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430만 회원’ 전미총기협회, 과거엔 “게임ㆍ영화가 문제” 주장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의 대응을 전미총기협회(NRA) 특유의 ‘침묵 전략’과 비슷하다고 평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NRA는 사건 발생 전인 지난주까지만 해도 총기 발사 소리가 나지 않는 소음기(silencer) 합법화 운동을 벌이며 규제론자를 ‘히스테릭하다’고 몰아가는 홍보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 그러나 스티븐 패덕이 2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총기를 난사한 이후 NRA의 모든 SNS는 게시물이 끊겼고 NRA는 짧은 입장 표명조차 없다.

시민단체 ‘총기폭력중단을 위한 연대’의 조시 호어위츠 대표는 온라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이를 “NRA의 굴욕은커녕 잘 확립된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28년간 NRA의 행태를 주시했다는 그는 “주류 매체들이 사건과 연관 지어 총기문제를 열렬히 다루는 시기가 지나고 (총기 소유 외에) 책임을 돌릴 만한 새로운 비난의 대상이 떠오르면 그때서 NRA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사건의 경우, 일주일간 침묵한 끝에 모습을 드러낸 웨인 라피에르 당시 NRA 대표는 “누군가가 비극을 정치화하는 동안 우린 존중을 위해 침묵했다”고 주장한 후 ‘잔혹한 비디오 게임’ ‘피 튀기는 슬래셔(살인마가 등장하는 공포물) 영화’ ‘살인을 흔하게 묘사하는 뮤직비디오’ 등 대중 매체가 총기난사사건의 원인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오마르 마틴이 성소수자 나이트클럽을 습격한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때는 “(미국 내 무슬림을 보호하려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올바름”이 원인이라는 주장을 폈다.

NRA의 여론 돌리기에 430만 NRA 회원들은 막대한 후원금으로 보답했다. 2013년 총기 규제 입법 논의가 활발할 때 NRA는 270만달러(약 30억원)를 모금해 로비 비용으로 썼고 2016년 대선 때는 최소 3,600만달러를 모금한 것으로 집계됐다. 후원금은 고스란히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자금으로 사용됐다.

NRA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정파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애국주의 진영이 아니라 주류 공화당이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5년 전 샌디훅 사건 때만 해도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총기규제 추진을 지지한 바 있다. 그러나 2015년 들어 트럼프 자신이 공화당 대선후보로 출마하기로 결심하면서 주류 노선으로 갈아탄 정책 분야 중 하나가 총기 규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선거유세에서도 “힐러리(클린턴)가 대통령이었다면 지금쯤 (총기 개인 소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2조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3일 푸에르토리코 허리케인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와 기자들의 총기 규제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워싱턴=UPI 연합뉴스

수정헌법 2조 전통… 소유자 74% “총기소유는 내 자유의 핵심”

그러나 공화당의 지지나 NRA의 로비만으로 ‘총기 소유의 자유’가 유지된다고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단순하게 생각해서 만약 미국인들이 원한다면 총기 규제가 당연히 입법될 것”이라며 미국의 여론이 여전히 총기 규제에 거부감이 강한 것이 규제 도입 실패의 핵심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전세계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개인의 총기 소유가 가장 활성화된 나라다. NRA 추정으로 미국인 대략 5,500만명이 총기를 보유 중이다. 하버드대와 노스이스턴대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개인이 보유한 총기 수는 2억6,500만개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전세계 민간인 총기 소유 현황을 모두 조사한 것 중 가장 최신 자료는 2007년 스위스의 ‘스몰암즈서베이’가 발표한 내용인데,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인구 100명당 총 89자루를 소유하고 있다. 2위인 예멘이 100명당 55자루라 격차도 큰 편이다.

2017년 6월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총기 소유자의 74%는 총기 소유를 “내 자유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에서 총기 소유가 쉽기 때문에 총기난사 사건이 더 잦게 발생하느냐는 물음에는 44%만이 동의했다. 총기소유 지지자들은 개인의 총기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이 공공 안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오히려 조직폭력단을 중심으로 한 범죄자들이 총기로 자신을 위협할 때 스스로와 집을 보호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총기 사유의 핵심 근거로 거론되는 수정헌법 제2조의 유구한 역사도 걸림돌이다. 1791년 연방 중앙정부의 과도한 권력 남용을 경계해 제정된 수정헌법 1조부터 10조를 미국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부르는데, 이 중 2조가 “무장한 민병대는 자유로운 국가 수호의 핵심”이므로 “개인의 무장 소유 및 휴대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의 권리장전에 기원을 두고 있는 조항이지만, 미국에서는 초기 식민지 개척과 독립전쟁, 서부 개척 등 미국의 “자유를 위한 투쟁”사에서 ‘개척자 정신’을 발휘한 개인들의 자유를 보호해 준 것이 개인 소유 총기였다는 관점이 담겨 있다.

총기규제 논란이 민주당 중심으로 정치권의 입길에 오를 때마다 규제 반대파는 “수정헌법 제2조를 무너트리려 한다”고 몰아세워 여론을 뒤집었다. 한 번 여러 조건을 들어 제한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 개인의 총기 소유라는 근본 권리까지 침해할 것이라는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로(slippery slope)’ 논리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게다가 수정헌법 제2조를 비롯한 권리장전은 ‘중앙집권적 연방주의’에 대항해 각 주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기 때문에, 연방의회에서 총기규제를 내놓는다 해도 주정부나 의회 측에서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만 1일 발생한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사건은 이전과 상황이 다르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총에는 총으로 대응한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방어 불가능한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군중으로부터 300미터 밖 건물 위에서 자동소총에 가까운 속도로 총기를 난사하는 경우는 전례도 없었던 데다 대비할 방법도 사실상 없다. 라스베이거스 경찰청 부보안관 케빈 맥마힐은 “32층 위 건물에서 자동소총으로 공격을 받았다. 그런 공격에 누구도 대비할 수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자동사격 체험장 ‘머신건 베이거스’를 운영 중인 젱기스 코언은 사건 발생 후 사격장을 임시 휴업하기로 했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친구의 딸이 다리에 총을 맞아 수술을 받았고 한 직원의 친구는 사망했다”며 “총기 옹호자들의 협박 메일을 받았지만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약 새 법(총기규제)이 시민들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면 왜 마다하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그는 제한은 인정하더라도 민간의 총기 소지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은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부가 모든 악당의 총기를 빼앗는다면, 나 역시 내일 당장이라도 총기를 반납할 용의가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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