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핀테크 업체 협업 늘면서
이색 간편 결제 서비스 속속 출시
“입지 좁아진 카드사 생존 전략” 분석
#. 자동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어선다. 기름의 종류와 할인혜택 적용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설정한다. 주유를 마친 뒤 결제 순간,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꺼낼 필요는 없다. 결제는 ‘차’가 자동으로 한다.
자동차가 곧 결제 수단이 되는 ‘커넥티드 카 커머스’ 얘기다. 신한카드는 올해 안에 이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카페, 음식점, 꽃집 등 중소규모 가맹점에서도 차량 결제를 시험하고 있다. 음식이나 꽃 등을 구입할 때 차에서 내릴 필요 없이 주문한 상품을 건네 받기만 하면 된다.
신한카드가 커넥티드 카 커머스를 준비할 수 있었던 건 2년차 스타트업 ‘오윈’의 역할이 컸다. 차량마다 디지털 아이디를 부여하고 이를 앱과 연결해 자동차 기반 결제 시스템을 위한 기술을 제공했다. 차량에 일종의 칩을 부착하면 가맹점을 지날 때 결제정보가 스마트폰 앱으로 전송된다.
4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최근 카드사들이 내놓는 이색적인 간편 결제 시스템은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것들이 많다. 카드사가 가진 금융 인프라와 스타트업의 기술력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식당 계산대가 아닌 테이블에 앉아서 모바일로 결제할 수 있는 ‘테이블 페이’ 서비스를 내달부터 시작한다. 점원이 가져다 주는 주문서의 QR코드를 스캔하면 KB금융그룹의 통합 플랫폼인 ‘리브메이트’를 통해 결제가 된다. 이 서비스는 ‘오케이포스’, ‘더페이’사와 제휴해 추진하는데 이 중 더페이는 KB금융이 작년부터 투자해 온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걸을 때마다 포인트가 쌓이는 헬스케어 특화 카드 ‘KB국민 가온 워킹업카드’도 마찬가지. 이 카드는 웨어러블 장치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직토’와 국민카드의 합작품이다. 직토가 만든 더챌린지 앱을 통해 측정된 걸음 수에 따라 카드 포인트가 적립된다.
카드사들이 스타트업과 적극 손을 잡게 된 배경에는 카드사들이 포화경쟁 속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앞으로 카드사는 모바일 결제에 밀려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생존방식을 찾아야 하는 카드사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소규모 핀테크 업체와 협업하면서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카드사들은 스타트업과 제휴를 맺을 뿐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업체를 발굴ㆍ육성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 현대카드는 서울 강남역 인근의 공유 오피스 건물 ‘스튜디오 블랙’에 스타트업 기업들을 입주시켰다. 마케팅, 디자인, 위험관리 등에 대해 멘토링 제도를 운영하고 투자자들을 상대로 기업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국민카드는 최근 자체 심사를 거쳐 선발된 스타트업 9곳의 사업 계획을 내부 임직원들에게 소개하고 공동 사업화 방안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연말에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열어 높은 평가를 받는 업체에게 초기 투자를 진행하고 영업활동도 공동으로 펼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장래성 있는 스타트업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지분 투자도 늘려가는 추세”라면서 “이들과 협업하면 고객에게 더 편리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를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항배 중앙대 교수는 “금융은 서비스의 복잡성 때문에 새로운 기업이 만들어지기가 어려운데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금융 산업의 생태계가 넓어지고 있다”며 “보수적인 기존 플레이어를 자극하는 ‘메기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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