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경제 제재와 한중관계 경색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 주목된다. 대중 수출 주력 상품인 반도체와 석유화학제품의 가격이 크게 오른 덕분인데, 양국 관계 회복이 더딜 경우 장기적으로는 대중 수출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8월 대중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0%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의 전체 수출 증가율인 7.6%를 크게 넘어서는 수준이다. 한국은 주로 중국에 중간재를 팔고, 중국이 그것을 최종 생산물로 바꾸어 미국 등에 수출을 하기 때문에 대중 수출 증가율과 중국의 수출 증가율은 상관관계가 높다. 2015년과 지난해 중국 수출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을 때, 한국의 대중수출도 줄었다.
올해가 특이한 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명시ㆍ묵시적 경제제재가 계속됐는데도 수출액은 오히려 늘었다는 점이다. 품목별 수출 증가율을 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반도체 수출이 25.5%, 석유화학제품이 14.5% 급증하며 전체 수출 증가율을 이끌었다. 두 품목은 최근 업황이 개선되며 수출 단가가 크게 상승한 업종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특히 한국이 세계 시장 점유율의 72%를 장악한 D램의 경우, 평균 가격이 지난해 1기가바이트(GB)당 0.55달러에서 올해 평균 0.67달러로 20%나 올랐다. 석유화학제품 역시 국제유가 상승 덕분에 수출 단가가 높아졌다.
기저효과(비교 시점과 현재의 차이가 커서 결과가 왜곡되는 것)로 인한 착시도 일부 작용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줄었기 때문에, 수출 단가 등 상황이 조금만 개선돼도 증가율이 크게 나타나게 된다. 올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의 수입금액 중 한국 제품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지난해 10.0%에서 올해 9.4%로 하락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수출이 중국의 ‘사드 제재’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몇 가지 특이한 변수 때문에 그 영향이 아직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ㆍ북미 관계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한중 관계 역시 경색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 것도 문제다. 국제금융센터는 “당분간 대중 수출은 양호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중국경제 구조가 변하고 기저효과가 소멸되면 높은 증가율이 유지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며 “중국의 자체 조달이 늘고 가공무역(중국이 한국의 중간재를 가공해 최종재로 파는 것)이 축소되는 등 구조적 변화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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