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 계기
총기 규제 강화 여론 높아져
민주 “관련법 이번엔 개정해야”
총기協 등 정치적 제약 많아
법안 의회 통과 쉽지 않을 듯
트럼프도 규제안 마련 부정적
1일(현지시간) 발생한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 정치권에서 ‘총기 규제’ 논쟁이 재점화하고 있다. 사망자 59명을 비롯, 6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올 만큼 역대 최악의 총기 참사로 기록되면서 인명 살상 도구인 총기류의 자유로운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총기 이슈가 전통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부정적 견해가 강해 이번에도 규제안 마련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일 AFP통신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라스베이거스 북동쪽에 위치한 범인 스티븐 패덕(64ㆍ사망)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총기 18정과 탄환 수천발, 폭발물 제조 물질 등을 찾아냈다. 용의자가 머문 만달레이 베이 호텔방에서도 소총을 포함해 최소 16정의 총기가 발견됐다.
패덕의 정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문은 그가 이 많은 총기를 어떻게 자유롭게 소유하고 범행 장소로 옮길 수 있었느냐에 모아진다. 심지어 60대 범인이 살상을 쉽게 하기 위해 AK-47 소총을 전자동으로 개조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해 6월 49명이 숨진 올랜도 총기 범죄 사망자 기록을 1년여 만에 갈아치우는 등 총기 강력 사건 발생 주기가 빨라지면서 미국 내 여론은 규제 찬성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총격 현장에서 살아 남은 콘서트 기타리스트 칼렙 키터는 이날 트위터에 “나는 평생 수정헌법 2조(무기 소유 권리)를 지지했지만 어젯밤 내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 알게 됐다”고 적었다. 매년 미국에서 총기로 사망하는 사람은 3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인 민주당은 사건 직후 트럼프 행정부에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하며 총공세에 나섰다.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생각과 기도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썼고,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은 “동료들이 총기산업에 두려움을 느껴 이런 전염병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 화가 난다”며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겨냥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정치를 한 쪽으로 치워놓고 전미총기협회(NRA)에 대항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은 민주당의 요구에 대해 “비극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 역겹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미 CNN방송은 “대중이 아무리 총기 규제를 지지하더라도 총기 관련 법안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유는 총기 산업이 정치에 미치는 입김 때문이다. 2012년 12월 어린이 20명이 사망한 코네티컷주 샌디후크 초등학교 총기 참사 이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강력한 총기규제 법안을 추진했으나 의회의 벽에 가로 막혀 실패로 끝났다. 하물며 공화당이 상ㆍ하원 모두를 장악한 현재 의회 정치 지형에서 법안 통과는 더욱 어렵다는 애기다. 공화당에 막강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단체 NRA의 위상과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 정치 일정 등 구조적 장애물도 규제 강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총기 규제를 꺼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역시 걸림돌이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치적 논의에는 때와 장소가 있다”며 현 시점에서 총기 규제 논쟁이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올 4월 NRA가 주최한 포럼에 참석해 회원들을 ‘친구’로 지칭하면서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절대 침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 정치자금 감시단체 CRP에 따르면 NRA는 지난해 대선 때 트럼프 캠프에 3,000만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CNN은 “총기 옹호론자들은 규제 강화에 수년이 걸리고 개혁이 시작되더라도 연방정부 차원이 아닌 주나 도시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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