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 방지 차원서 따로 보관키로
혼란스러운 외교부 보는 듯해 ‘혼비백산도’ 악명
작정하고 떼어 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1층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 있다. 말 20마리가 갈기를 휘날리며 뛰고 있는 '도약(Jump)'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2002년 현재의 외교부 청사가 문을 연 것을 기념해 정부가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에게 의뢰해 내건 뒤 지금까지 15년 간 외교부 청사의 얼굴 노릇을 해온 그림이다.
이 그림이 조만간 외교부 청사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3일 "그림이 한 곳에 오래 걸려있으면서 부식 등 자연적인 훼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전문가의 감정을 최근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전임 정부인 지난 3월께 말 그림을 떼내 다른 장소에서 따로 보관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현재 그림을 보관할 장소를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그림 훼손을 막기 위해 일종의 안식년을 갖게 한다는 뜻으로 이르면 올해 안으로 외교부는 말 그림을 떼낼 것으로 알려졌다.
가로 12m, 세로 2.5m 화폭 안에서 말 스무 마리가 호쾌한 몸놀림을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외교부안에서 이 그림은 '혼비백산도'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참여정부 시절 외교부 간부가 노무현 대통령을 폄훼했다는 의혹이 드러난 이른바 ‘자주파-동맹파 사건’을 비롯해 ‘김선일씨 피랍사건’, ‘재외공금 유용 폭로 사건’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외교부와 스무 마리의 말들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닮았다는 지적에서다.
하물며 당시 반기문 장관도 "객담이지만 말들의 방향이 제 각각이어서 어디로 갈지 방향을 못 잡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말 그림 얘기가 나와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외교부가 ‘휴전협정서'와 ‘헤이그 만국평화회담 3밀사' 사진 등 중요 사료들을 말 그림 주변에 배치한 것도 '말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서'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후 다른 장관들도 로비를 지나며 "그림이 정신이 없다"고 지적하는 등 외교부가 구설수에 오를 때 마다 말 그림은 외교부 관리들의 미움 아닌 미움을 받아온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이야기로 통한다.
때문에 외교부가 이번에 말 그림을 떼내기로 한 것 역시 그림 훼손 때문이 아니라 '이제야 말로 떼내자'라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이 그림에 담긴 그간 소문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외교부 청사를 관리하는 한 직원은 "위에서(고위급이) 이 그림을 보기 싫어한다는 말을 요새도 듣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15년 밖에 되지 않은 그림을 훼손 방지를 목적으로 따로 보관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라고 미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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