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북핵 위기 속에서도 추석을 맞은 석유화학업계가 풍년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에틸렌 등 기초제품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데다 해외 경쟁업체들의 재난 피해로 반사이익을 얻는 등 내ㆍ외부 요인이 겹치며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3분기는 통상 석유화학업계의 비수기로 알려져 있지만 올해는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 수준의 실적을 올릴 전망이다.
3일 증권업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업계 1, 2위를 다투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3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7,600억원대와 8,000억원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각각 60%와 25% 이상 늘어난 수치다. 한화케미칼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 이상 늘어난 2,4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은 올 상반기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42.4% 증가한 1조 5,238억원을 기록했고, 롯데케미칼의 영업이익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9% 늘어난 1조 4,470억원을 나타냈다.
석유화학 업계 호황은 세계 경기 회복세에 힘입은 석유화학 제품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늘어나면 원유에서 뽑아내는 기초 원료인 에틸렌 수요가 덩달아 늘어나기 때문이다. 에틸렌은 플라스틱 용품, 기저귀 등 생필품에서 자동차까지 각종 산업에 쓰이며 ‘석유화학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우리나라는 에틸렌 연간 생산량 기준 세계 4위(약 900만톤)인데 롯데케미칼이 그 가운데 323만톤, LG화학이 220만톤을 생산한다.
업계에 따르면 에틸렌 가격은 지난달 톤당 1,200달러까지 오르며 올 2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고, 에틸렌 가격에서 원재료 가격을 뺀 마진은 톤당 800달러를 넘어서며 연중 최고치를 나타냈다. 지난 6, 7월 에틸렌 마진은 500달러대까지 떨어졌었다. 에틸렌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수요가 느는 데 비해 공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의 대형 경쟁사들이 화재와 홍수 등으로 피해를 입으며 공급이 크게 줄었다. 지난 8월 초 유럽 최대 정유공장인 로열더치셸 공장은 화재로 가동이 중단됐다. 이 공장은 하루에 40만배럴의 원유를 처리해 왔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가 미국 최대 정유ㆍ석유화학 단지가 있는 텍사스주 멕시코만 지역을 강타하면서 대형 공장들이 일제히 가동을 멈췄다. 설비에 아무런 피해가 없더라도 재가동까지는 최소 수주가 소요되며 보수 공사가 필요할 경우 정상 가동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실적 호조는 연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합성고무 원료인 부타디엔 가격도 고공행진 중이다. 세계 고무 생산 1위 국가인 태국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천연고무 공급이 줄어들자 대체제인 부타디엔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동북아 부타디엔 가격은 지난달 톤당 1,500달러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약 550달러였던 지난 7월보다 58% 오른 수치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은 부타디엔 생산능력에 있어서도 국내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연간 각각 44만9,000톤, 29만5,000톤을 생산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만 해도 하반기 세계 에틸렌, 부타디엔 수급 및 가격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는데 허리케인, 홍수, 화재 등 외부 요인들로 인해 올 연말까지는 에틸렌과 부타디엔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전망이어서 국내 업체들도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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