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새 3.7배 급증… 지난해에만 2,347건
학부모ㆍ교사 위주 학폭위 전문성 떨어져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 끼쳐요.” 서울의 고등학생 A양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학기 초 학교 화장실을 이용하다 칸막이 아래로 불쑥 들어온 스마트폰 카메라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조사 결과 가해자는 같은 학년 남학생이었다.
수도권 소재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B양은 지금도 학교 가기가 두렵다. 지난 여름 내내 남학생들로부터 성희롱 언어폭력에 시달렸던 탓이다. “너 꽃뱀이지?” “중학생 때 네 친구 남자친구한테 꼬리쳐서 같이 잤다면서?”와 같은 근거 없는 성희롱에 B양은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두 사례 가해자들은 모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넘겨졌지만 가해 학생은 겨우 특별 교육과 서면 사과 조치에 처해졌을 뿐이다.
학교 내 성폭력이 매년 늘고 있다. 30일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초·중·고등학교 학폭위의 성폭력 심의 건수가 해마다 증가했다. 2012학년도 심의 건수 642건에서 2013년도 878건, 2014년도 1,429건, 2015년도 1,842건, 2016학년도 2,347건으로 늘었다. 5년 새 약 3.7배 높아진 수치다.
학교 내 성폭력 심의 건수가 학폭위에서 다루는 전체 학교폭력 심의 건수 중 차지하는 비율도 해마다 늘었다. 2013년 4.9%에서 2014년 7.3%, 2015년 9.2%, 2016년 10.0%으로 3년 동안 두 배나 상승했다. 지난해의 경우 학폭위가 심의·처리하는 학교폭력사건 10건 중 1건은 학교 내 성폭력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급증한 학교 내 성폭력의 주요 유형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몰카’ 촬영”이라며 “장난으로 생각하고 큰 죄의식 없이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또 학교 내 성희롱, 성추행 등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 학생들이 유튜브, 1인 미디어 등을 통해 선정적인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같은 반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에 따라 죄의식 없이 성폭력을 가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학교 내 성폭력 사안을 다루는 학폭위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학폭위 구성 구조의 한계 때문이다. 교육부가 제출한 학폭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일선 학교 학폭위 위원의 57%가 학부모, 27.5%가 교사였다. ‘전체위원의 과반수를 학부모대표로 위촉할 수 있다’는 법률(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3조)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이보람 변호사는 “학부모 위원이나 교사의 경우 전문지식이나 관련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학폭위 위원의 전문성이 부족할 경우 학교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사안조사나 상황 판단 측면에서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내 성폭력에 적용되는 법률만 해도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성범죄’, ‘아동복지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형법’ 등 4개 이상이다. 그러나 실제 학폭위가 학교 내 성폭력을 심의·처리하는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이 될 만한 건 교육부에서 배포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정도가 전부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법률 개정을 통해 학폭위 구성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대 국회에서 현재 계류 중인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13건 중 6건이 학폭위 구성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폭위 위원 3분의 1을 외부전문가로 구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전희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는 이 비율을 전체위원의 과반수까지 높이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동섭 국민의당 의원은 대표 발의한 법률개정안을 통해 학폭위를 아예 교육지원청 소속으로 상향해 교육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기구로 재구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조인식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학폭위 구성 방식 변경이라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이 정도면 법안이 많이 발의된 것”이라며, “이러한 입법개정안들을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민지 인턴기자(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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