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가 줄기에 구멍 뚫으면
올빼미 제비 등이 들어와 ‘거주’
멕시코에서는 흔한 식재료
오푼티아 줄기 조리해 먹어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은 오해
1400여종 중 3분의1이 멸종 위기
크고 화려한 꽃과 통통하게 물이 오른 줄기, 그리고 날카로운 가시…. 사람들이 기억하는 선인장의 첫인상은 매우 강렬합니다. 하지만 이 독특한 매력을 가진 식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신대륙이 발견된 15세기에 아메리카 대륙과 함께 처음 소개되기 시작했고, 17세기만 해도 온실을 가진 일부 귀족이나 부유한 재력가들만이 기를 수 있는 식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요즘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이 식물에게 필요한 온도 환경을 쉽게 맞춰줄 수 있게 되었지요. 또 높은 인테리어 효과와 천천히 자라는 생육속도 등 여러 가지 관리상의 이점 때문에 점차 많은 관심과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선인장, 넌 누구니?
건조한 환경이나 사막기후에 적응해 살아가는 건생식물 중에서 몸속 조직에 수분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식물을 다육식물이라고 합니다. 다육식물은 주로 잎과 줄기, 뿌리에 수분을 저장하며, 저마다 독특한 특징과 생존전략으로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고 있지요. 그리고 다육식물 중 일부만이 선인장 과로 분류됩니다. 그러면 다육식물 중 어떤 식물을 특별히 선인장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선인장을 뜻하는 용어 ’켁터스(cactus)’는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가 선인장과 식물을 지칭하기 위해 그리스어인 ‘칵토스(kaktos)’를 처음 사용하면서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이 식물을 부르는데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던 이유는 바로 기존의 구대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식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인장은 오직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자생하며, 아프리카에 자생지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선인장인 ‘립살리스 바치페라’ 역시 새에 의해 퍼지게 됐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국내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푼티아(Opuntia) 자생지가 있는데요. 이것 역시 쿠로시오 난류에 의해 제주도 해안에 밀려온 선인장이 모래땅이나 바위틈에서 자라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인장을 기타 다육식물과 구별시키는 가장 특징적인 구조는 ‘에리올(areole)’입니다. 에리올은 선인장 줄기에 있는 작은 꼭짓점이나 돌기같이 생긴 눈인데, 그곳에서 가시와 새순, 꽃 등이 자라게 됩니다. 이 에리올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가시는 비교적 쉽게 식물체에서 분리가 되는 반면, 다육식물 등 선인장이 아닌 식물의 가시는 식물의 줄기 조직에서 바로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에리올이 육안으로 잘 보이는 것은 아니어서, 선인장이 가시가 있는 다른 식물과 혼동되기 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선인장은 사막에만 산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 중 하나는 선인장이 사막에서만 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인장을 비롯한 다육식물들은 훨씬 더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대부분 ‘반(半)사막지역’에서 산발적인 강우에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이곳은 사막지역과는 다르게 암석이나 암반이 표면에 드러나 보이며, 드문드문 초목이 자라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선인장은 높은 고원과 암석 사면 등 산악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기도 합니다. 이곳의 토양은 토심(토양의 깊이)이 낮거나 수분이 적고 미네랄 성분이 많을뿐더러,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밤에는 차가운 바람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식물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선인장이 사는 가장 의외의 지역은 아열대나 열대 우림입니다. 덥고 습한 기후가 유지되는 숲에서 사는 선인장들은 상대적으로 충분한 수분과 수풀 사이로 들어오는 강하지 않은 햇빛을 받고 살아갑니다. 착생식물로서 주로 나무나 바위 표면에 몸을 부착하여 자라는데 대표적인 종으로는 남아메리가 원산의 에피필럼, 디소칵투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다양한 선인장
많은 사람들이 선인장의 독특한 생김새에 이끌려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사실 이 식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식재료와 약재, 생활도구나 집 짓기의 재료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음식으로서는 주로 열매를 먹거나 식물체를 채소처럼 조리하는 방식으로 이용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식용 선인장은 오푼티아입니다. 멕시코에서는 ‘노팔(nopal)’, 영미권에서는 서양배를 닮은 열매 모양 때문에 ‘가시 배 선인장(prickly pear cactus)’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 백년초, 손바닥선인장 등의 이름으로 재배되며 다양한 건강식품에 이용됩니다.
오푼티아 열매는 멕시코 시장에서 과일처럼 흔하게 팔리는 식재료입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재배되는 종은 ‘오푼티아 피쿠스인디카’인데, 열매의 가시를 제거하고 생으로 먹거나 졸여서 잼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또, 가시를 제거한 오푼티아의 어린 줄기를 잘라서 채소처럼 조리해서 먹는데 이것을 ‘노팔리토’라고 합니다. 멕시코에서는 통조림이나 병조림으로 된 제품을 쉽게 살 수 있고 가공되지 않은 것은 시장에서 채소처럼 구입할 수 있습니다.
14~16세기에 멕시코에서 번성하였던 아즈텍 문명에서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깍지벌레를 얻기 위해서 ‘오푼티아 콕체닐리페라’를 대량 재배하였습니다. 깍지벌레의 일종인 코치닐 벌레를 선인장 밭에서 길러서 염료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코치닐 벌레는 갈거나 짓이기는 방식으로 손쉽게 염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암수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색상이 다른데 수놈은 다홍색, 암놈의 경우는 선명한 보라색 염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염료는 귀족의 의복이나 예복을 염색하는데 사용하였으며, 16세기에 멕시코에 온 스페인 사람들도 대규모 선인장 농장을 짓고 거기서 생산한 염료를 스페인 본국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남아메리카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는데, 주로 립스틱이나 식품의 발색에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인장은 사막 동식물의 좋은 이웃
척박한 사막에서 피는 선인장의 꽃은 사막의 동물들에게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주로 해가 있을 때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지만, 한밤에 개화해 야행성 동물들을 불러 모으기도 합니다.
해가 진 뒤에 개화하는 사와로 선인장의 꽃은 다음날까지 피어 있기도 하는데, 밤에는 박쥐가 꿀을 먹기 위해 찾아오고 낮에는 개미와 벌, 나비, 여러 새들로 붐빕니다. 사와로 선인장은 사막의 아파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만큼 많은 동물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꽤 넉넉한 선인장의 내부는 낮에는 바깥보다 시원하고, 밤에는 따뜻하기 때문에 새들의 안식처로 적합합니다. 딱따구리는 선인장의 줄기에 여러 구멍을 뚫어 집을 만드는데, 이 새가 뚫어 놓은 여분의 집에 올빼미, 제비, 딱새 등 다양한 새들이 들어와 거주하게 됩니다. 딱따구리가 만든 사와로 선인장 줄기의 구멍에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아갑니다.
선인장의 멸종 위기는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심 때문
선인장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람들의 보호나 관심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강한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선인장이 다른 식물에 비해 척박하고 거친 환경에서 독창적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적응하여 살아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에 따르면 선인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에 속하며, 전체 1,400여종의 선인장 중 약 3분의 1이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불법적인 종자와 식물 채취이며, 선인장의 생육 특성상 어린 개체에서는 결실을 하지 않거나 자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전시 가치가 있는 대형 선인장의 경우는 사유지나 식물원, 국립공원 등에서 도난당하기도 합니다.
선인장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서식지 감소인데, 주로 도로건설, 광산 개발, 농업과 목축업, 벌채, 도시개발 등 인간의 생활권 확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선인장의 서식지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최근 25년간 5%까지 개체수가 줄어든 종들도 보고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까지 가속화하고 있어,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위기에 처한 선인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다소 낯설고 이국적인 이 식물이 인간과 함께 맺어온 역사와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선인장이 주변의 여러 동식물과 맺고 있는 다양한 생태적 관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생물 다양성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법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준수하려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모든 야생 선인장은 1975년 이래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의해 거래가 제한되고 있으며, 한국은 1993년 이 협약에 가입해 환경부에서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자생지에서의 불법 채취나 거래를 근절하고 재배된 식물만을 구입하는 방법만으로도 많은 야생 선인장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미국 오르간파이프 선인장 국립공원에서는 다양한 연구 조사와 함께 부분적인 식물 자생지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원 내에 있는 묘포장에서는 선인장을 비롯한 여러 사막식물의 어린 묘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구 기후 변화, 서식지의 감소 등으로 인해 생물종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고,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이것이 인간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모든 생물은 생태계 내에서 각자 지위에 맞는 역할을 하고, 인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작은 선인장 하나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우리가 모두 연관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이 지구에서 사람이 자연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유진 국립생태원 온실식물부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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