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미얀마 로힝야 난민 사태 해결을 위해 미얀마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얀마 정부는 ‘인종청소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유엔이 이번 사태에 앞서 로힝야족에 대한 체계적 폭력을 감지하고도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8일(현지시간) 미얀마 의제를 다루는 공개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구테흐스 총장은 로힝야 사태를 “세계에서 가장 급격하게 확산 중인 난민 위기이자 인도주의와 인권의 악몽”이라고 규정하며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의 본래 거주지인 라카인주 일대에서 군사 작전을 즉각 중단하고 난민들의 안전 귀환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인도주의 위기는 극단주의의 확산, 범죄와 밀입국의 증가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난민 문제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뿐 아니라 주변 국가의 내부 혼란과 소수민족을 향한 공격으로도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번 연설에서 ‘인종 청소’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특정 종족 집단을 본거지에서 몰아내려는 극히 우려스러운 폭력 양상”이라고 규정했다.
유엔 안보리의 미얀마 관련 공개회의는 2009년 이후 8년만이다. 로힝야 난민 사태 이후 미얀마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심이 고갈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구테흐스 총장의 연설에 호응해 “라카인주 폭력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미얀마 정부군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상원에서도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공화당ㆍ애리조나)과 벤 카딘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메릴랜드)를 비롯한 21명이 미얀마 정부 인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단행을 요구했다.
우 따웅 툰 미얀마 국가안보보좌관은 즉각 구테흐스 총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미얀마에는 인종 청소도 부족 청소도 없다”며 “현재 상황은 종교분쟁이 아닌 테러리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구테흐스 총장이 직접 미얀마에 방문해 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유엔이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에 대한 체계적 폭력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다수의 전직 유엔 미얀마지부 업무에 관여한 관계자를 인용해 “최소 4년 전까지 유엔 미얀마지부가 의도적으로 로힝야 사태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으며 인권운동가들이 라카인주를 방문하는 것도 허용치 않았다”고 보도했다. 정황상 유엔이 폭력 사태의 확산을 방조한 셈이다.
2013년에서 2015년 사이에 미얀마 주재 업무조정국장 역을 맡았던 카롤린 판데나벨은 BBC에 “유엔 고위직 회담에서 로힝야는 사실상 금기어였다”고 주장했다. 유엔 미얀마지부는 BBC의 해당 보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지만 한 관계자는 “이미 유엔 내부에서도 라카인주 사태를 스리랑카 내전처럼 유엔의 완벽한 실패로 여기고 있으며 곧 자체 조사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유엔이 로힝야 인도주의 위기에 적극 개입하려는 것은 이 사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지난 수년간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국제기구분과 부국장인 메건 로버츠는 “전 유엔난민기구 수장이자 ‘조용한 외교’를 선호했던 구테흐스 총장이 로힝야 사태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했다”며 미얀마 정부를 향한 발언의 수위를 강화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안보리가 로힝야 사태 논의를 시작한 28일에도 난민의 수는 늘었고 인명피해도 늘고 있다. 방글라데시 해안에서는 로힝야족 난민을 실은 배가 거친 파도로 인해 전복돼 최소 63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목격자들은 “눈 앞에서 배가 뒤집혔고 잠시 후 시신이 해변으로 밀려 왔다”고 증언했다. 유엔인권사무소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는 지난 8월 25일 이후 50만명이 넘는 난민이 넘어왔으며 기존에 머물던 난민을 포함하면 방글라데시 내에만 로힝야족 70만명이 머물고 있다.
8월 25일 로힝야 반군 무장집단인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의 경찰초소 습격 이후 정부군과 민병대는 로힝야 무슬림 마을을 소각하는 등 대대적인 ‘청소작전’에 나서고 있으며 50만명 이상의 난민이 이웃 국가 방글라데시로 대피했다. 미얀마 정부는 작전이 9월 5일에 종결됐다고 주장했지만 로힝야 난민은 계속해서 방글라데시로 넘어오고 있다.
미얀마는 1980년대부터 로힝야족을 비국민으로 규정하고 차별해 왔다. 현재 난민 위기 이전에도 로힝야 난민은 2015년 2만5,000여명이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로 탈출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미얀마군의 로힝야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 폭력은 이르면 2012년부터 보고된 바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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