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전 장관 문건 확보
2012년 댓글공작 수사 착수
원세훈도 국고손실 혐의 기소할 듯
침묵하던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현 정부의 적폐청산을 ‘퇴행적 시도’라며 반발에 나선 건 자신을 향해 좁혀 들어오는 검찰 수사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타깃으로 수사해왔지만, 최근 국군 사이버사령부(사이버사) 운영 총책임자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이 전 대통령이나 당시 청와대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전담 수사팀은 최근 김 전 장관을 출국금지하고, 2012년 사이버사 댓글 공작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사이버사 활동을 기획ㆍ지휘하고, 이 전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이 사이버사 관련 내용을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확보됐기 때문이다. 이 문건에는 보고 대상이 대통령(VIP)을 의미하는 ‘V' 표시가 돼 있다.
앞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2년 3월 10일 ‘사이버사 관련 BH(청와대) 협조 회의 결과’라는 문건을 공개하고 사이버사 군무원 증원을 두고 ‘대통령께서 두 차례 지시하신 사항'’이라고 언급한 것을 지적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사가 예년보다 10배 많은 79명의 군무원을 선발하고 이 중 47명을 댓글 공작을 도맡아 한 530심리전단에 배치한 것에 이 전 대통령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이버사 수사는 초기 단계다. 좀더 조사를 진행하고 검토해본 다음 수사 계획이나 구체적 일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오른팔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도 속도가 붙고 있다. 검찰은 사이버 댓글 부대를 운영한 혐의로 구속된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과 원 전 원장을 국고손실 혐의로 기소할 방침을 세웠다. 민 전 단장의 구속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추석 연휴 중이라 우선적으로 두 사람을 공범으로 기소한다는 것이다.
원 전 원장의 다른 혐의도 수사가 종료되는 대로 추가 기소할 예정이다. 원 전 원장은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문건 작성 및 실행, 문화ㆍ예술계 인사 블랙리스트,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 운영 및 그에 필요한 국정원 예산 불법 사용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해 “위선에 대한 수사한계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밝혀 이 전 대통령 수사까지 열어뒀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을 수사 사정권 내에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원 전 원장과 김 전 장관이 이 전 대통령을 책임자로 진술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데 필요한 증거나 증언을 확보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며 “이 전 대통령이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도 그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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