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군측 내달 대규모 상경 집회
환경단체선 “부결했어야” 불만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문화재위)가 27일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와 관련한 양양군의 현상변경 신청에 보류 결정을 내리면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가 문화재위의 부결이 부당하다고 결정한 사안에 문화재위가 사실상 반기를 들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당분간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27일 문화재위 천연기념물분과 회의에서는 현상변경 신청에 대한 가결이 예상됐다. 지난해 문화재위의 현상변경안 부결에 반발해 양양군은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중앙행심위는 지난 6월 부결이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이날 문화재위 회의는 중앙행심위 결정 뒤 열린 것이라 현상변경을 허가하거나 지난해와는 다른 이유를 들어 부결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됐다. 중앙행심위가 속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관계자는 “행정심판은 법원 판결과 똑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어 문화재위가 동일한 이유로 케이블카 설치를 거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위가 사업심의 보류 결정을 내린 이유를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위원 11명 중 7명이 올해 5월1일자로 새로 위촉되면서 사업에 대해 이해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재위 관계자는 “지난해 부결됐던 보고서 내용, 부결 사유, 새로 작성된 보고서 등을 신규 위원들이 면밀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며 “필요하다면 현지 실사와 방문도 하자고 해서 보류 결정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화재위의 설명은 보류 결정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많다.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문화재위는 중앙행심위 결정 3개월 만에 거듭 부결을 택하기도, 자신들의 결정을 뒤집어 가결로 입장을 바꾸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면 문화재위가 난처해지니 케이블카 설치 허가를 늦추면서 행정 절차상 문제가 없는, 보류라는 어정쩡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화재위 입장에선 ‘신의 한 수’지만 외부에는 ‘꼼수’로 여겨질 결정이었다.
오색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기대가 컸던 양양군 측과 이를 반대해 온 환경단체 모두 문화재위의 결정 지연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다음달 중순 장애인 단체와 연대해 대규모 상경 집회를 계획 중이다. 비대위는 앞서 지난달 31일 양양군민 714명 명의로 감사원에 문화재청에 대한 정책감사를 청구하며 “행정기관과 환경단체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케이블카 설치에 따른 환경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케이블카반대 설악권 대책위 등 환경단체는 문화재청이 보류가 아닌 부결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설악산은 국립공원으로 5개 이상의 보호구역이 있는 곳”이라며 “설악산 보존을 위한 문화재위의 케이블카 불허처분을 뒤집은 6월 중앙행심위의 결정은 국가문화재 설악산의 가치를 실추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재위의 보류 결정이 봉합 국면으로 가던 갈등을 다시 촉발한 셈이다.
문화재위 천연기념물분과 회의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린다. 문화재청은 다음달 25일에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지만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한 문화재위 관계자는 “회의에서 (현상변경안에) 적극적으로 찬동한 의견이 없었다”며 “가결할 일이라면 진작 가결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만약 같은 이유로 부결한다면 양양군에서 다시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고, 우리는 무효선언을 하거나 또 다시 (부결 결정) 취소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는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지구와 대청봉 정상에서 1.4㎞ 떨어진 끝청을 연결하는 삭도를 놓는 것이다.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전체 사업 구간 3.5㎞ 중 3.1㎞가 천연기념물 제171호인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에 포함돼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 없이는 진행할 수 없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kilbo.com
양양=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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