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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부모님께 현금 드려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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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부모님께 현금 드려야 한다고요?"

입력
2017.09.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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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배리 웰시(38ㆍ스코틀랜드ㆍ한국 거주 8년) 동국대 조교수와 럭키(40ㆍ인도ㆍ한국 거주 21년)씨, 일리야 벨랴코프(35ㆍ러시아ㆍ한국 거주 16년)씨.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왼쪽부터 배리 웰시(38ㆍ스코틀랜드ㆍ한국 거주 8년) 동국대 조교수와 럭키(40ㆍ인도ㆍ한국 거주 21년)씨, 일리야 벨랴코프(35ㆍ러시아ㆍ한국 거주 16년)씨.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추석이다. 당신에게 명절은 무엇인가. 휴일? 스트레스? 행복? 교통 체증? 한국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명절은 어떤 모습일까. 배리 웰시(38ㆍ스코틀랜드ㆍ한국 거주 8년) 동국대 조교수, JTBC 예능프로그램 출연자인 일리야 벨랴코프(35ㆍ러시아ㆍ한국 거주 16년)씨와 럭키(40ㆍ인도ㆍ한국 거주 21년)씨가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에서 만나 ‘한국인의 명절’을 얘기했다. 한국인의 명절, 이대로 괜찮을까. 세 사람의 솔직한 얘기에서 답을 찾아 보자.

-한국 추석 문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뭐였나요.

웰시=“송편 모양을 보고 초콜릿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놀랐어요(웃음). 명절 기간 서울이 텅 비어 유령도시가 되는 게 신기해요. 좀비 영화 ‘28일 후’(2002) 같은 풍경이에요(웃음).”

럭키=“그래서 명절을 서울에서 보내는 게 좋아요. 도시를 온전히 즐길 수 있으니까요. 명절마다 교통체증 때문에 난리인데 아무도 해결하지 않는 건 이상해요. 지난해 추석 때 충남 보령에서 서울로 이동하는데 9시간이나 걸렸어요.”

벨랴코프=“굳이 꼽자면, 선물로 참치나 스팸 통조림을 주고 받는 거요. 대체 왜죠? 참치, 스팸이 추석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소중한 사람들에게 정크 푸드를 선물하다니요(웃음).”

럭키=“스팸은 맛있으니까요. 제 부엌에선 1년 내내 스팸이 떨어지지 않아요(웃음).”

-명절이 그저 ‘출근 안 하고 쉬는 날’이 돼가요. 명절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걱정을 많이 하죠. 요즘 한국인에게 명절은 뭘까요.

럭키=“명절은 축제예요. 축제는 즐기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인은 평소에 워낙 못 쉬고 일만 하니까 시간만 나면 쉬고 싶어 해요. 명절 문화를 누리는 것도, 따뜻한 가족 관계를 확인하는 것도 뒷전이에요. 명절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축제로 보일 때가 있어요. 주객이 전도된 거죠. 한국 사회가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 붙인 부작용이라고 봐요. 일부 회사에 ‘가족의 날’이라고 6시에 반드시 퇴근해야 하는 날이 있다고 들었어요. 매일 6시에 퇴근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칼퇴근이 원칙인 지인이 있는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승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벨랴코프=“한국엔 휴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쉰다는 게 뭐고, 그게 왜 필요한지에 관심이 없어요. 휴일 일수는 한국이 러시아보다 많아요. 하지만 러시아인이 한국인보다 더 잘 쉬어요. 잘 쉬는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웰시=“학생들을 보면 딱해요. 고등학교까지 대학 입시 공부만 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 용 스펙 쌓을 생각만 하죠. 젊은 세대일수록 명절엔 푹 쉴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것 같아요.”

벨랴코프=“명절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건 한국인이 스스로 한국 문화를 무시하기 때문이에요. 명절을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이벤트 정도로 여겨요. 추석, 설날, 단오 같은 날 행사가 열리면 한국 사람은 안 보이고 외국인만 모여들죠. 아무도 한국 명절 문화를 지키려 하지 않아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가치, 특히 물질만능주의가 잘못 이식된 결과예요. 50대 이상은 명절의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젊은 세대는 몰라요. 해외 여행 가는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명절 문화가 사라지는 건 단지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병폐를 반영하는 거예요. 올해 3ㆍ1절에 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태극기 사진을 올렸어요. 한국 친구들이 ‘오늘이 무슨 날인데 태극기를 올렸냐’고 하더라고요. 젊은 세대가 자기 역사와 문화에 너무 무관심해요.”

럭키=“인도는 한국보다 명절이 많고 쉬는 날도 길어요. 명절의 편한 점만 취해서 즐기려 하는 건 인도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죠. 공 들여 음식을 만든다든지, 뭔가 준비하는 힘든 과정은 생략하려고 해요.”

-명절에 감정ㆍ육체 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이 많아요. 한국 사회에선 가부장제의 힘이 세니까요. 한국 사회가 달라지고 있나요?

웰시=“스코틀랜드에서도 명절 음식은 주로 여성이 준비해요. 하지만 분위기는 분명 다르죠. 한국 여성들이 명절에 일을 훨씬 더 많이 하더군요. 한국인 아내가 저와 결혼한 건 ‘한국인 시어머니’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몰라요. 저의 장점이 한국인의 아들이 아니라는 건 아니었을까요(웃음). 한국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이 체감하는 명절과 제 아내의 명절은 많이 달라요. 대부분 힘들어하더군요. 아내는 명절을 엄청 즐기고 좋아해요. 이번 추석에 우리는 집에서 푹 쉬면서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볼 거예요. 처가 식구들과 식당에 가서 편한 식사도 하고요. 우리 부부 모두 명절을 기다리고 있어요. 고부 갈등이나 명절 며느리 스트레스가 싫어서 외국인과 결혼하거나 졸업하고 외국에 나가겠다고 하는 여학생들을 많이 봤어요. 뼈 있는 농담이죠.”

럭키=“처가 식구들과 고스톱을 쳐 봐요. 장모님 돈 따면 재미있을 텐데(웃음).”

웰시=“한국어학당에서 고스톱을 배우긴 했는데, 더 치고 싶진 않아요(웃음).”

럭키=“인도의 명절 풍경은 한국과 비슷해요. 여성은 일하고 남성은 가만히 앉아 쉬어요. 성별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돼 있던 수백 년 전 문화가 21세기까지 남아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죠. 남성들이 반성해야 해요. 자기들만 즐거우면 그만인 게 아니잖아요.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해야 해요. 여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요.”

벨랴코프=“그런 면에선 러시아가 한국보다 훨씬 보수적이에요. 여성이 일을 더 많이 하는 명절 문화는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걸로 끝나선 안 돼요. ‘한국 명절 문화는 잘못됐어’라는 식으로 스스로 폄하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화가 무너지는 거예요. 문화를 바꾸는 노력과 교육이 중요해요. 지금 젊은 세대가 어른이 되면 남녀 역할을 불합리하게 구분하는 건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예요. 그래서 여성들이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바꿀 수 있는 걸 바꾸려고 노력해야 해요. ‘나는 이런 한국이 너무 싫어, 외국인이랑 결혼할 거야’라고 반응하는 건 옳지 않아요.”

-명절에 현금이나 비싼 선물을 주고 받는 문화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요. ‘명절은 일하고 돈 쓰는 날’이라는 말도 있어요.

럭키=“현금 봉투가 두꺼워 보여야 한다고 5만원 지폐 대신 굳이 1만원 지폐를 은행에서 찾아 넣는 게 신기했어요. 같은 10만원인데 봉투가 얇으면 왜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나요? 인도에도 명절 선물 문화가 있어요. 예컨대 디왈리 축제 때는 달콤한 과자, 사탕을 담은 스위트 박스를 주고 받아요.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조금 더 비싼 내용물로 채우고요. 한국인들은 선물을 받으면 얼마짜리인지 꼭 확인하려 하는 것 같아요. 선물하는 사람도 ‘비싼 선물을 줬으니 그만큼 대접을 받겠지’라고 계산하고요. 그래서 선물할 일이 있으면 가격 확인이 안 되는 인도산 차 같은 걸 준비하죠. 선물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건 어리석어요. 용돈을 더 많이 드리면 부모가 자녀를 더 많이 사랑할까요? 솔직히 기분은 좋겠지만, 그렇지 않죠. 중요한 건 선물 액수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에요. 또 가족끼리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거고요.”

웰시=“저는 장모님께 현금을 드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특별한 날에는 꽃 같은 작은 선물은 드려요. 앞으로도 현금을 드릴 생각은 없어요. 스코틀랜드에도 추수를 기념하는 축제가 있는데, 그때는 선물을 주고받지 않아요. 선물은 크리스마스에만 주고받고, 어린 아이들에겐 용돈을 조금 주기도 하죠. 그런데 한국인 장모님께는 사위가 정말 현금을 드려야 하는 건가요?”

벨랴코프=“의무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는 서구에서 들어와 잘못 정착된 겁니다. 한국 고유의 문화가 아닌 것 같아요. 솔직히 그건 선물이 아니죠. 세금이나 마찬가지죠. 미국의 팁 문화처럼 변질됐어요. 팁이나 선물이나 원래 마음이 우러나면 주는 거죠. 러시아에선 선물 대신 돈을 주는 건 모욕에 가까운 행동이에요. 누군가에게 돈을 주는 건 ‘너는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야. 선물 고르는 시간도 아까워. 이거나 받아’라는 뜻이에요.”

-한국 가족 문화가 위기라고 하죠. 명절에 가족이 모두 모이는 건 언젠가부터 당연한 일이 아니고요.

럭키=“명절에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댁에 가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어쩔 수 없으면 명절 당일에만 잠시 들르고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밥 먹는 게 부모님과 식사하는 것보다 편하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문화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가족이 그런 존재여야 할까요? 인도의 유명한 배우가 미국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인도에선 부모님과 식사할 때 시간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함께 먹으면 된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부모님과 식사하는 게 큰 일인 한국이나 미국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죠.

요즘 ‘욜로(YOLOㆍYou Only Live Onceㆍ한번뿐인 인생) 트렌드’가 인기죠. 매일 당장 즐겁게 사는 데 빠져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는 건 위험해요. 젊을 때는 가족이 필요 없다고 느낄 수 있겠죠. 부모님을 챙기는 게 귀찮고 혼자 있는 게 편하고요. 하지만 부모님 생각도 해야 해요. 가족이 모이는 것만으로 부모님은 너무나 행복해 하세요. 인도에 계신 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고요. 문제는 또 다시 한국인이 너무 바쁘다는 걸로 돌아가요. 오죽 바쁘고 피곤하면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까요. 안타까워요.”

웰시=“스코틀랜드에선 명절이 여전히 즐거운 날이에요. 한국인처럼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요. 한국의 가족 문화, 특히 세대 간 관계는 경직돼 있어요. 가족 모임에 격식을 엄청 차리더군요. 그런 관계 자체에서 사람들이 압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도 2년 전 결혼하고 맞은 첫 명절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스코틀랜드는 달라요. 부모님과 자녀들이 술집에도 함께 가고, 스스럼 없이 대화해요. 모두 가족 모임을 기다리죠.

욜로가 뜨는 건, 젊은 사람들이 그 만큼 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예요. 사회가 구조적으로 개인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니까 혼자 어떻게든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거죠.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여행을 다니는 학생들을 종종 봐요. 슬픈 현상이에요.”

벨랴코프=“가족의 가치가 무너지는 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세계적 경향이고 한국도 뒤따르고 있는 거죠. 언젠가 가족 개념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봐요. 솔직히 러시아에서 제 가족은 어머니와 저뿐이었기 때문에 대가족의 가치를 잘 몰라요. 행복하다면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가족 개념이 등장한 건 여성들이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묶여 있었기 때문이죠. 남성들이 여성들을 부양하고 사는 형태로 가족 공동체를 만든 건데, 이제 남녀 관계와 역할이 달라졌잖아요. 굳이 가족을 구성할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닐까요.

한국인이 가족 관계에 집착하는 데는 지리적 이유도 있어요. 한국은 작은 나라예요. 멀리 가도 부산이니, 명절 같은 때 모이는 게 당연하죠. 떨어져 살아도 같이 산다고 여겨요. 러시아는 달라요. 서쪽에서 동쪽 끝으로 가려면 비행기로 11시간쯤 걸려요. 일찍 고향을 떠난 아버지는 50년 동안 가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대요. 어쨌든 한국에서 가족의 가치가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지금의 문제는 가족을 바라보는 세대 간 시각 차이로 인한 갈등이에요. 그걸 풀어 가는 게 관건이에요.”

럭키=“인도에선 사람들이 의존적 관계를 맺고 살아요. 가족, 친구들이 서로 기대 사는 게 안정적이라고 느껴요. 요즘 한국인들의 관계는 독립적이예요. 슬픔도, 기쁨도 혼자 느끼고 해결하려고 하죠. 그래서 가족 문화가 달라지고 있고요. 그런데 대가족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인들이 한국인들보다 행복할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가족의 가치를 지켜 내는 거예요. 늘 함께 지내지 못한다 해도,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건 꼭 필요해요.”

진행ㆍ정리=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bo.com

현지호 인턴기자(성균관대 경영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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