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에서 판매되는 생리대와 어린이용 기저귀는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위해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이로써 3월 무렵부터 시작된 ‘생리대 파동’은 일단락이 됐지만, 이번 평가는 문제가 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84종 가운데 10종에 대해서만 우선 실시된 것이어서 소비자들의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식약처는 28일 충북 오송 본부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생리대 VOCs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성환경연대 등의 문제 제기로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8월부터 실시된 이번 조사는 국내에 유통되거나 해외 직구로 들어오는 생리대와 팬티라이너 제품 총 666개와 판매량이 많은 어린이용 기저귀 10개 등 총 676개를 대상으로 했다. 전체 VOCs 84종 가운데 생식 독성과 발암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판단된 에틸벤젠, 벤젠, 톨루엔 등 10종의 함유량을 확인한 결과, 어떤 생리대ㆍ기저귀에서도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줄 정도의 VOCs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어떻게 평가했나
생리대의 위해물질 평가는 국제 공인 방법이 없어서 식약처는 새로 기준을 만들었다. 각 생리대 1개당 10종의 독성량을 측정한 후, 생리대는 하루 7.5개씩 한 달에 7일간(팬티라이너는 하루 3개씩 매일)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해 전신 노출량을 산출했다. 인체에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 최대량(독성참고치)과 비교해서 전신노출량보다 독성참고치가 더 크면 안전하다고 봤는데, 이번 시험에서 모든 제품이 이 기준을 충족했다는 것이다. 각 물질의 독성참고치는 구강(경구)으로 흡입했을 때 피부흡수율을 기준으로 적용했다.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이라는 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이영규 생리대안전검증위원회 부위원장(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은 “43kg 여성이 하루 7.5개씩 한 달에 7일간 평생 사용했을 때 생리대에 함유된 VOCs가 인체에 100% 흡수된다는 극단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성량 측정은 생리대를 초저온(-196도)으로 동결, 분쇄한 후 고온(120도)으로 가열해 휘발물질 측정하는 함량시험법을 썼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위해성 기준이 확립된 것이 없어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대한 한계는 지적된다.
모든 제품 안전? 릴리안은 희생양인가
식약처의 발표에 따르면 생리대 안전성 논란을 촉발했던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은 10종 독성 검출량에서 1종에서만 검출량이 가장 많았다. 물론 검출량 1위 제품들도 모두 안전성 기준을 충족해 순위는 크게 의미가 없다. 때문에 여성환경연대가 부작용 접수 사례까지 취합해 발표하고, 생산 중단과 환불에까지 나선 릴리안은 현재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릴리안을 포함해 모든 생리대가 아직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식약처에 270건, 소비자보호원에 80건, 여성환경연대에 2,700여건의 생리대 부작용 사례가 보고돼 있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VOCs 10종에 대한 조사 만으로 생리대 전반적인 안전성을 확신하는 것은 이른 면이 있다”며 “유해물질의 양이 적어도 노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노출된 독성 물질이 사람의 몸에서 자궁내막증, 생식호르몬교란등을 일으키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조사는 어떻게
식약처는 올해 말까지 추가 74종의 VOCs에 대한 2차 전수조사 및 위해평가를, 농약 등 기타 화학물질은 내년 5월까지 검사를 완료해 발표할 예정이다. VOCs 검출량을 주기적으로 검사해서 공개하고, 검출 원인을 파악해 저감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여성환경연대와 학계에서 제기해온 역학조사도 시기와 방법 등을 확정해 추진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생리대 사태에서 식약처가 보여준 안일한 대응을 개선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종태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현재 생리대에서 나오는 VOCs 가운데 벤젠 등 독성과 유해성이 있는 물질은 양이 적어도 우리가 사용하거나 먹는 것에서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되는 물질”이라며 “나오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 제품에서 유해물질이 나왔을 때 이를 관리하는 게 정부의 역할인데 정부ㆍ전문가ㆍ국민간의 ‘위해소통’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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