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첫 칼럼에서 필자는 ‘고용이라는 이름의 상자’를 논한 바 있다. 노동이 담긴 고용이라는 상자의 크기를 줄이되 두께는 강화시켜, 노동시장이라는 방에 보다 많은 고용상자가 들어가도록 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이 말은 현재의 안정된 일자리를 누리는 사람들의 임금과 노동시간을 조정하더라도 적절한 수준의 안정성을 갖춘 일자리를 늘려 전체 사회적으로 고용기회를 증진시키자는 말이다.
임금과 노동시간의 조정을 정규직의 절대적 양보라고만 볼 필요는 없다. 이른바 ‘시장임금’, 그러니까 노동시장에서 노가 노동력을 제공하고 사로부터 받는 대가의 양은 줄이더라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정책적 수단을 통해 ‘사회임금’, 즉 개인의 생활을 꾸리는 데 있어 정부의 지원까지 포함해서 계산되는 소득을 늘리면 되기 때문이다. 고용상자의 두께를 강화시키자는 말이 이거다.
게다가 사회임금의 증대는 양질의 복지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고 그 부문의 고용도 추가로 증진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괜찮은 고용상자가 지금의 극단적 소비위축자들인 취약고용층, 취준생들에게 제공되면, 그들도 내수진작에 기여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른바 ‘포용적 성장’의 시나리오다.
현재의 일자리 질서 하에서는 크게 네 가지 종류의 일자리(고용상자)를 생각할 수 있다. 고용안정도 누리고 양질의 근로조건도 누리는 일자리(A), 고용은 안정되어 있지만 근로조건은 취약한 일자리(B), 고용은 안정되어 있지 않지만 근로조건은 그나마 양호한 일자리(C), 그리고 고용과 근로조건 모두가 취약한 일자리(D)이다.
혹자는 A뿐 아니라 B와 C도 좋은 일자리에 속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동의하기 힘들다. 그저 D만 줄이면 된다는 식의 사고로 정책을 펴는 것은 부족하다. B와 C에 속하는 일자리들도 가급적 A를 향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허나 A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기에 ‘전환’이 모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A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고임금을 위해 적지 않은 일자리에서는 장시간 노동이 팽배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 파괴된다. 그렇기에 A도 바뀌어야만 한다.
대안은 뭘까. 필자는 ‘스몰 에이(a)‘에서 답을 찾고 싶다. A에서 시장임금의 부분은 줄이고 사회임금의 부분은 늘리면서 임금과 노동시간이 조정된 일자리가 바로 a이다. B, C, D도 A로의 전환을 생각하면 버겁겠지만 A대신 a를 목표로 한다면 훨씬 쉬울 수 있다. 앞으로 새로운 투자를 통해 만들어지는 일자리들도 a를 최대한 지향하도록 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지금보다 덜 힘들 것이다.
a는 당연히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이해대변의 기회가 충실히 갖추어진, 노동권의 사각지대로부터 벗어나 있어야 하며, 8시간 노동하고 8시간 자며 8시간 쉬고 가족 및 여가생활을 하면서도 충분히 먹고 살고 자아실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여전히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절실한 시대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만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종래의 일자리 질서에 대한 적절한 수정까지 동반해야 실효성, 형평성, 지속가능성 모두를 갖출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일자리 관련 사회주체들이 대표성을 갖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이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심화와 실질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도 받았지만, 그나마 가꾸어진 민주주의도 노동시장에서 연대(solidarity)와 통합(integration)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일자리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스몰 에이’ 일자리를 바라보며 재정립해 나가며 경제사회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1년 간 함께 해 준 독자들께 감사 드린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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