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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근질근질

입력
2017.09.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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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뭐지? “나비가 걷고 있다”. 개미가 나비 날개를 물고 가는 것이다. 먹이가 되거나 뭔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아 나르는 것일 텐데, “일개미는 처음으로/날개옷을 입어 봤다”. 이 순간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는 아이의 눈에 나비 날개는 개미의 노동의 대상에서 ‘날개옷’으로 변신한 것이다. 바람이 도와서 날개가 일렁이자, 개미는 “땅에서 발을 들어 올리기만 하면/낮고 낮은 구멍을 벗어나”게 된다. 한번도 날아 보지 못했던 일개미는 몸이 근질근질, 날개옷이 파르르 떨린다. 으차차, 발을 구르고 라차차, 붕 떠올라서 하늘까지 찜한다.

시든 동시든 우리 둘레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소소한 사건들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작품이 적지 않다. 장세정의 ‘근질근질’도 우리가 조금만 눈여겨보면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을 담았다. 산문적으로 보면 개미가 날개를 물고 가다 바람에 휙 날렸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의 눈은 다르다. 날개옷을 얻은 기회를 타고 개미는 일에만 매몰됐을 ‘낮고 낮은 구멍’을 벗어나려는 충동에 몸을 싣는다. 일개미에게 일상을 벗어나는 경험을 열어 준다. ‘근질근질’을 읽으며 나도 몸이 근질근질, 개미의 날개 달기를 응원한다. 일상의 작은 사건들 가운데 날개를 달고 솟구쳐 하늘까지 닿을 수 있는 일들이 때때로 일어났으면 좋겠다.

장세정 시인은 2006년 ‘어린이와 문학’지 추천을 통과하여 11년 만에 첫 동시집 ‘핫-도그 팔아요’를 냈다. 공모에서 상을 받아 곧바로 동시집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를 포함하여 대개 첫 작품집을 내기까지는 오랜 기간 습작과 정련을 거치게 된다. ‘스트라이크’ ‘스프링말’ ‘강아지풀’ ‘폭탄세일’ 등 섬세하고 눈 밝은, 허투루 나온 표현을 찾아볼 수 없는 단단한 작품들을 읽는 즐거움이 크다. 이번 주말부터 사실상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가볍게 떠나는 여행 가방 속에, 뒹굴뒹굴 휴식 때 먹을 고소한 간식 그릇 옆에 그동안 ‘김이구의 동시동심’에서 소개한 동시집을 한두 권 갖춰 놓자. 마음부터 넉넉하고 평온해지리라.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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