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대신해 수술실서 처치까지
법외 직종 불구하고 많게는 1만명
전공의 특별법으로 더욱 증가 예상
PA 의료 사고 땐 심각한 법적 분쟁
“전문 간호사 양성해 합법화 필요”
“비인기과 지원 늘려야” 반론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병동에서 일하는 20대 A씨는 외과 교수와 함께 회진을 돌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수술 전후 병동에 입원한 환자를 상대로 상처를 꿰매고, 붕대를 갈고, 약을 처방하는 것이 A씨의 주 업무. 그가 야간 당직을 하는 날 입원 환자에게 응급 상황이 생기면 간호사들은 A씨에게 연락해 필요한 처방을 받는다. 여느 전공의(레지던트)의 평범한 일과처럼 보이지만, A씨는 의사가 아닌 경력 2년차 PA(Physician Assistant)다. 간호사 면허가 있는 A씨는 “내가 하는 일은 전공의와 거의 차이가 없다”면서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의료 사고 발생 시)법적으로 보호 받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과에 단 한 명 있는 전공의가 졸업하면, 앞으로 한동안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병원측이 PA를 추가 모집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 보조 인력’으로 불리는 PA가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늘면서 의사ㆍ간호사에 이어 임상 현장의 한 축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하지만 PA는 국내 의료법상 근거가 없는 직종. 공공연하게 ‘가짜 의사’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누구도 이 문제를 수면 밖으로 꺼내기를 조심스러워 한다.
27일 병원간호사회의 ‘2016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으로 병상이 150개 이상인 병원 201곳(설문 조사 응답 병원 기준)에서 일하는 PA 간호사 수는 2,921명에 달한다. PA 숫자는 2010년 말 조사(1,532명ㆍ184개 병원)의 두 배, 2005년 말 조사(404명ㆍ190개 병원)의 7배에 이를 정도로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간호계는 전체 병원에서 일하는 PA 숫자는 적게는 7,000명, 많게는 1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의료법에 근거가 없음에도 PA는 전공의처럼 병원에서 전문의를 도와 수술실에서 시술을 하거나, 병동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일을 한다. 병원들이 일반외과나 흉부외과, 비뇨기과 등 전공의 모집이 여의치 않은 진료과의 부족한 일손을 PA로 채우고 있어서다. 한 유명 대학병원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중에 PA를 안 쓰는 곳은 1곳도 없다고 봐도 된다. PA 없이는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PA로는 주로 간호사가 채용되며, 드물게 응급구조사나 의료기사가 뽑히기도 한다.
태생 탓에 PA는 불법과 편법 논란에 늘 시달린다. PA의 대다수인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PA가 전공의를 대신해 임의로 하는 간단한 시술이나 처방은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병원들은 계속 PA를 늘린다. ▦비(非)인기과의 전공의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데다 ▦의사 추가 채용에 드는 인건비를 아낄 수 있고 ▦보건당국도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의 주간 근무 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 특별법 조항이 올 연말 시행되면 손이 더 딸리게 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 PA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PA의 음성적 활용이 낳는 가장 큰 문제는 의료 사고 시 불투명한 책임 소재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PA가 진료를 하다가 의료 사고가 났을 때, 책임 소재를 두고 심각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보건당국이 ‘간호 인력이 부족하다’면서도 인력 누수를 부추기는 PA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는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그간 PA로 투입된 1만명 가까운 간호 인력이 간호ㆍ간병 통합서비스 확대에 투입됐다면 4만 병상 가량을 더 확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제시되는 대안은 PA를 합법화해 권한과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든지, 아니면 PA가 진료 행위를 하지 못하게 확실히 법 집행을 하든지 두 가지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의사 인건비는 비싼데, 의사가 해야 할 일은 늘어나면서 기존에 의사가 하던 일 중 비핵심적인 업무가 PA 등 다른 의료 인력에게 위임되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이라며 “PA 제도를 양지로 끌어 올릴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백찬기 대한간호협회 홍보국장 역시 “석사 학위를 가진 ‘전문 간호사’ 인력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PA를 합법화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나영명 실장은 “우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인 인구 당 의사 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린 뒤, PA 합법화 문제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며 의대 정원 확대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공의와 개원의를 중심으로 한 의사 단체들은 PA 합법화와 의대 정원 확대 모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동훈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병원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저질러 온 불법을 지금껏 눈감아 오던 당국이, 이제서야 돌이키기 어렵다는 논리로 합법화하자는 것은 ‘범죄가 일상화 했으니 인정하자’는 것과 같다”면서 “외과ㆍ흉부외과ㆍ내과 등 생명을 다루는 필수 과가 전부 망해가는 추세인데, 이를 의사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PA 문제는 비인기과에 대한 정부의 수가 인상 또는 재정 지출 확대로 전공의 지원이 늘도록 하는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환자들은 속이 탄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사들이 PA 합법화는 안 된다면서 의사 인력 확대도 동시에 반대하니 ‘직역 이기주의’라는 눈총을 받는 것”이라면서 “환자 안전은 뒷전에 밀려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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