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용으로 제작된 예능프로그램이 지상파방송으로 잇달아 진출하고 있다. 방송사가 비주류 시장의 스타를 섭외하거나 프로그램을 참조해 제작하는 형식(MBC ‘마이리틀텔레비젼’)을 넘어, KBS2 ‘김생민의 영수증’처럼 원작의 포맷을 그대로 살려 방영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프로그램을 TV로 끌어오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지만, 포맷의 신선도가 높아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1회당 방송분량 15분에 6부작으로 편성해 방영한 KBS2 ‘김생민의 영수증’은 애초 온라인 플랫폼인 팟캐스트 프로그램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한 코너로 출발했다. 사연자가 폭주하면서 지난 6월 별도 프로그램으로 독립했고, 누적 다운로드 수 1,000만건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어 지상파까지 진출했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인기에 힘입어 2편을 추가 방영했고, 추석 연휴를 겨냥해 ‘몰아보기’ 특집 방송까지 편성했다.
모바일 콘텐츠 제작 회사 모비딕이 선보인 ‘양세형의 숏터뷰’도 추석 연휴 중 SBS에서 4부작으로 방영된다. 지난해 6월 표창원 편으로 시작한 ‘양세형의 숏터뷰’는 7~10분간의 짧은 분량에 콩트를 가미한 독특한 형식의 인터뷰로 인기를 끌었다. 모비딕은 SBS가 지난해 설립한 자회사다.
지상파 라디오는 이미 ‘팟캐스트 전성시대’다. 팟캐스트 ‘정선희, 문천식의 행복하십SHOW’가 MBC표준FM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시대’로,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 SBS 러브FM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로 진출하기도 했다.
방송계 관계자들은 지상파가 콘텐츠를 독점하던 시대의 종언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동영상 사이트, 애플리케이션 등 채널이 다양해지고, 세분화 되면서 시청자도 여러 채널을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방송을 제작하던 지상파방송 역시 특정 대상의 욕구를 충족시킬 콘텐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제작사 몬스터유니온의 한 관계자는 “시청률 10~20% 넘는 것보다 팬덤을 만드는 게 중요해졌다”며 “시청자의 독특한 취향을 반영한 콘텐츠만 살아남게 됐다. 이제 지상파도 모든 콘텐츠가 보편적인 정서를 띄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20~30대 직장인을 타깃으로 했다. 시청자가 보낸 지출 내역을 보고 저축과 절약 노하우를 알려주는 단순한 방식이다. 재미는 지질한 B급 발언에서 나온다. “곽티슈는 회사 직급 임원 이상일 때 쓰는 겁니다.” “커피는 신동엽이 사줄 때 먹는 거죠.” 과소비한 소비자에게는 질책도 따라왔다. “프라이팬 놔두고 토스트기를 사셨네요? 이 분, 스튜핏(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케이블채널의 약진과 지상파방송의 부진도 이유로 꼽힌다.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내놓지 못하는 지상파방송이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인기가 보장된 비주류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으로 비주류 프로그램이 주류 TV 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비주류 프로그램과 기존 TV와의 호환성여부, 애초 메시지를 그대로 살릴 수 있는가 등을 분별해내는 제작진의 역량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