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부 관료들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연일 각을 세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 파악을 위해 여당인 공화당 연계 전문가들에게 지속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반도 전술핵 배치, 미 정부 내 이견 상황 등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 해석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같은 움직임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측이 트럼프 대통령 또는 공화당과 접점이 있는 전문가들에게 계속해서 만남을 요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최근 북한 측은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연계된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소속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에게는 평양 방문을, 과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재직했던 더글러스 팔 카네기 평화연구소 부원장에게는 스위스 등 중립 지역에서 자신들과 공화당 연계 전문가 간 회동 주선을 요청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그들(북한)은 미국 학자와 전직 관료들에게 연락을 취하려 온 힘을 쏟고 있다”며 “하지만 북한 정권이 말하고자 하는 명백한 메시지가 있다면 미국 정부에 직접 접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과 팔 부원장이 모두 북한의 부탁을 거절함에 따라 회동은 불발했으나, 현재 북한 측의 이러한 접촉 시도는 파악되는 것만 7건에 달한다. WP는 “미국을 핵ㆍ미사일로 위협하는 이들의 요청이라 보기엔 놀라운 횟수”라며 “김정은 정권이 미국과 외교적 대화가 전무한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방향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북한 관리들은 최근 북미간 대치가 격화하면서 트럼프 정부의 전략에 대해 더욱 세부적으로 캐묻고 있다. 트럼프 취임 초기 ‘그가 주한ㆍ주일 미군기지 폐쇄를 진지하게 고려 중인가’, ‘한국에 정말 미 핵무기를 배치할 것인가’ 등 비교적 거시적인 질문을 내놓았다면 최근에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각료진은 왜 이렇게 자주 대통령과 모순되는 발언을 하나’와 같이 구체적인 자문을 구하는 식이다. 실제 이번달 초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안보정책센터(GCSP) 주최 연례 회의에 참석한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 등 북측 대표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내용을 “백과사전처럼” 외우고 있었다고 한 고위급 참가자는 전했다. 다만 북한의 의도는 여전히 협상이 아닌 핵보유국 지위 획득에 집중돼 있다고 WP는 분석했다.
한편 트럼프 정부는 이날도 지난 21일 발효한 새 대북 제재 행정명령(13810호)에 따른 추가 조치를 내놓으며 대북 압박을 이어갔다. 미 재무부는 이날 농업개발은행, 제일신용은행 등 북한 은행 8곳과 기존 제재 대상 기관인 조선무역은행, 고려대송은행 등의 국외 지점에서 근무하는 북한인 26명을 제제 목록에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북한 은행들의 경우 미국 경제 시스템 바깥에 존재해 실질적인 제재 효과는 없지만 이들과 거래해 온 중국 은행들에는 상당한 압박 요인이 될 전망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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