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령 정비해 내년 여름부터
세계서 마지막으로 허용
“여성운동의 기념비적 승리”
보수파들 반발은 잠재 상태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지 않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내년 여름부터 이를 허가하기로 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26일(현지시간) 왕령을 통해 사우디 내에서 여성들이 운전할 수 있도록 허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왕령은 관련 절차를 거쳐 늦어도 2018년 6월 24일 전까지는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이나 사우디 교통법에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지만, 사우디 당국은 여성들에게 면허를 교부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여성의 운전을 금지해 왔다. 운전권 확보는 사우디 여성운동가들의 숙원 중 하나였기에 이번 명령은 여성운동의 기념비적 승리로 해석된다.
여성 운전권 요구 운동은 1990년부터 시작됐지만 운동가들은 온갖 멸시와 차별에 시달리다 2011년 ‘아랍의 봄’ 직후 마날 알샤리프의 활동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얻게 됐다. 샤리프는 자신이 직접 운전하는 영상을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시켰다가 당국에 10여일간 구금됐고, 그를 석방하라는 국제적인 구명운동이 벌어진 바 있다. 샤리프는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여성의 운전을 허용한 국가가 됐다. 우린 해냈다”고 기쁨을 표시했다.
여성 운전 허용은 사우디 정부가 점진적으로 추진해 온 여권 신장 개혁의 일환이다. 이는 지난 6월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된 실권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비전 2030’개혁안과도 직결된다. ‘비전 2030’은 여성의 사회참여와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는 구습들을 개선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 건국기념일인 지난 23일에는 ‘금녀구역’이었던 파드 국왕 경기장에서 개최된 기념행사에 여성들이 사상 최초로 참석하기도 했다.
다만 근본주의 성직자를 위시한 보수파의 반발은 잠재해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무하마드 왕세자를 비롯한 사우디 내 경제개발론자 진영의 개혁 공세에 보수파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사우디 전제군주정의 특성상 드러내 놓고 반대하진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우디의 여권 신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슬람교와 유목문화가 결합해 형성된 무슬림 근본주의 와하비즘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호자 제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사우디 여성은 결혼과 이혼은 물론 학습ㆍ여행 등 사회활동이나 중대한 수술조차 가족관계인 남성 ‘보호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우디 여성운동가들은 이에 저항해 ‘내가 나의 보호자다(#IamMyOwnGuardian)’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샤리프는 “운전권은 얻었지만 보호자제도 폐지 운동은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아랍의 봄’ 저항운동 이래 사우디를 비롯한 이슬람 세계에서는 여성 권리 신장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에 부응한 개혁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강간 후 피해자와 결혼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강간혼’제도의 불법화다. 올해 7월에는 튀니지, 8월에는 요르단과 레바논이 법률의 강간혼 조항을 폐지했다. 터키에서도 지난해 피해자와 혼인한 강간 용의자를 면책하려는 법안이 제출됐다가 여성 단체의 격렬한 반발로 입법이 저지됐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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