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역행 ‘해피트레인’
이산가족 어르신 80여명 참여
망배단에서 북녘땅 향해 차례
“자네 고향도 그곳인가?” “맞네 맞아, 여기서 동네 친구를 만났구먼!”
기차 안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할아버지 세 명의 목소리가 일순간에 커졌다. 처음 만난 사이라는 이들은 금세 70년 지기 친구라도 된 듯 껄껄거리며 웃었다. 26일 열린 ‘희망풍차 해피트레인’ 행사에 참여한 이산가족들이다. 대한적십자사와 코레일은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을 위해 2013년부터 무료 열차인 평화열차(DMZ-Train)를 운영, 이산가족 어르신들의 접경지역 방문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실향민 합동차례인 망향대제를 지낸다. 이날 행사에는 85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했다.
어르신이 열차에서 고향 이야기에 빠져 있던 사이 서울역에서 출발한 평화열차는 한 시간쯤 지나 임진강역에 도착했다. “명절만 되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나.” 신동진(85) 할아버지 고향은 흥남 철수의 장소였던 함경남도 함흥시 흥남항 앞 기와집. 그곳에서 나고 자란 신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한으로 피란을 왔다. 당시 55세였던 어머니는 거동 불편한 할머니를 모셔야 해 함께 내려오지 못했다. “3개월만 떠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맨몸으로 내려왔다”는 신 할아버지는 60년이 넘도록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고향 사람들과 모여 옛이야기하며 외로움을 달랜다”고 말했다.
차례상이 차려진 임진각 망배단은 임진강역에서 버스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차례가 진행되자 가족이 있는 망배단 너머 북녘을 지그시 바라봤다.
어르신들이 차례로 나와 차례상에 절을 하는 가운데 박순임(84) 할머니는 그 앞을 한참 떠나지 못하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박 할머니는 “차례를 지내려 하니 불현듯 북에 있는 오빠 생각이 났다”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임진각에 자주 가 이제는 덤덤하다는 방영순(82) 할머니도 함경북도에 남겨 놓은 여동생 이야기에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동생이 돌보던 어머니는 이미 몇 년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방 할머니는 긴 한숨을 쉬며 “세월이 너무 흘렀지”라며 북녘 하늘을 바라봤다.
현재 통일부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13만명, 이 중 생존자는 6만명으로 절반도 채 되지 않지만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2015년 10월 20차 상봉 행사 이후 기약이 없는 상태다.
파주=글·사진 강진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