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시행하자 민간에서도 촉각
필요시 빠른 의제 설정하지만
상위법에 가로막혀 폐기도 빈번
해당 지역서 효력 가질 수 있게
“자치입법권 확대해야” 목소리도
서울시가 지난주 퇴근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업무 지시를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례를 신설했다. 일명 ‘카톡 금지 조례’인데, 전국에서 최초다. 근무 시간 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한 업무 지시를 없애 서울시 공무원의 휴식과 사생활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이 조례는 사실 강제성도 처벌 규정도 없는 반쪽 짜리 법이다. 실제 법 조항엔 ‘업무 지시를 금지한다’가 아닌 ‘업무 지시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로 명시돼 있다. 오히려 도덕적 규범에 가깝다.
그럼에도 법 적용 대상자인 서울시 공무원들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시 공무원 A(55)씨는 “밤 늦게 내일 오전 7시에 급하게 회의가 잡혔으니 자료 좀 만들어 달라는 지시 같은 건 못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시 공무원도 “간부들이 카톡으로 지시를 할 때 중요도를 따지고 이전보다 조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례의 상징적, 선언적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박성준 서울시 인사과 조직문화팀장은 “서울시 조례를 시작으로 민간 부문의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시대상, 지자체 특성 반영하는 조례
조례는 이처럼 변하는 시대상에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을 해 왔다.
최현재 서울시의회 법제관리팀장은 “조례는 사회적 의제를 설정해야 할 때 신속하게 제정과 개정이 가능하다는 큰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법 제정은 아무래도 조례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일례로 ‘온라인 퇴근’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 카톡 금지 조례보다 앞선 지난해 6월, 퇴근 후 SNS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3월 제정한 ‘1인 가구 지원 기본 조례’는 시대상에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탄생했다. 현재 서울의 1인 가구는 전체의 27%로 세 집 중 한 집은 혼자 사는 나홀로 가구다. 이들 가운데 절반(49.9%)은 월 평균 소득이 93만원에 그친다. 서울시는 이 같은 실태조사에 따라 홈셰어링, 소셜다이닝 등 ‘사회적 가족’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다. 1인 가구 지원 조례는 그 근거가 된다.
생활임금은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된 대표 조례다. 서울시의 내년도 생활임금은 시급 9,211원. 올해(8,197원)보다 12.4% 인상된데다 정부의 내년도 법정 최저임금(7,530원)보다 22.3% 많다. 이런 추세라면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시기로 내세운 2020년보다 서울시의 생활임금이 먼저 1만원대 진입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제정된 ‘지하철 출입구 금연 구역 지정 조례’는 간접흡연이 다른 사람의 건강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조례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꼬리표를 떼 버린 조례기도 하다. 서울시는 상위법인 국민건강증진법에 근거해 위반할 경우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했는데 조례 시행 4개월 만에 지하철 출입구 주변 흡연자가 86.1%나 줄었다.
자치입법의 한계
긍정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모든 조례는 태생적인 한계가 분명하다. 헌법과 법령의 테두리 안에서 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힘이 없다’보니 상위법에 발목이 잡혀 제 본래 뜻을 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조례가 허다하다.
서울시가 최근 제정한 ‘먹거리 기본 조례’가 그 예다. 먹거리 기본 조례에는 원래 서울시내 62개 청소년 시설의 자판기에서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넣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위법률의 위임이 없다 보니, 우회로를 택해 자판기에 탄산음료 대신 과일이나 채소 등 건강한 먹거리를 판매할 경우 서울시가 먹거리판매 우수업소로 인증해 주는 방안을 담았다.
최현재 팀장은 “이제는 조례의 질을 높일 시기”라며 “지자체 간 비슷비슷한 ‘카피 조례’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조례가 많이 나오려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자치입법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재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고 돼 있는 헌법과 지방자치법을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로 지금보다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도록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또는 조례로도 권리 제한이나 의무 부과를 할 수 있게 하거나 아예 지방의회에 법률 제정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보고서에도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 내에서 효력을 갖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 있다”며 “현재 조례로는 새로운 정책은 물론 진정한 자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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