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ㆍ여름 옷을 선보이는 패션 위크가 열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미국 뉴욕에서 자리 잡은 이래, 패션 위크는 패션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열리지만, 특히 뉴욕,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로 이어지는 소위 ‘빅 4’는 영향력이 굉장하다. 경제적 효과도 상당히 크다.
패션 위크는 보통 봄ㆍ여름(SS), 가을ㆍ겨울(FW)로 나눠 1년에 두 번 열린다. 옷 입는 계절보다 시간을 6개월 앞서가므로 보통 2월쯤 FW, 9월쯤 SS 컬렉션을 선보인다. 최근 패션 위크 회의론이 대두하면서 이런 기본 틀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패션 위크에 대한 의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굳이 다 같이 모여서 할 필요가 있는가’와 ‘굳이 캣워크 위를 걸어 다니는 쇼를 할 필요가 있는가’이다.
패션 위크에 대한 반기는 리조트(크루즈) 컬렉션과 프리-폴(Pre-fall) 컬렉션이 등장하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1년은 길고 SS와 FW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있다. 전 세계 고객을 상대하는 거대 브랜드라면 이 사이에 뭔가 더 넣어서 상품 회전율을 높이고 싶기 마련이다. 특히 요즘처럼 트렌드가 쉼 없이 변하는 시대에 6개월의 공백 같은 걸 넋 놓고 기다리긴 힘들다.
이런 행사는 결국 선보일 옷의 홍보가 목적인데, 큰 디자이너 하우스들은 어디서 하든 언론인과 유명 인사를 불러 모을 수 있기 때문에 패션 위크 같은 대형 행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소식이 알려지므로 어디서 행사가 열리는지도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색다른 광경을 만들 수 있다.
큰 행사를 치를 수 없는 작은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이목을 끌 만한 흥미로운 패션 제품을 만들었고 적절한 마케팅이 수반된다면 인스타그램에만 올려도 역시 보러 올 사람들은 온다. 즉 알릴 수 있는 채널과 방식이 다양해졌다. 꼭 모델들이 옷을 입고 캣워크 위를 줄줄이 걷지 않아도, 룩북이나 퍼포먼스 등 옷을 보여 줄 수 있는 다른 방식은 많다. 여기서 약간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생긴다.
패션 위크를 여는 도시 입장에서는 ‘빅 네임(유명한 이름)’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필요하다. 유명한 이름의 패션쇼가 열려야 세계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 네임 입장에서는 굳이 도시라는 제한에 갇힐 필요가 없다. 반대로 신인 디자이너는 많은 이의 주목을 받는 패션 위크가 필요하다. 하지만 패션 위크 쪽에서는 신인만으로 규모와 홍보 효과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런 대규모 패션 행사의 위력이 떨어지면 현재의 구도가 더욱 공고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새로 패션에 진입하는 디자이너는 주목받기 더 힘들어져 거대한 디자이너 하우스의 틈새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워진다. 뎀나 즈바살리아가 등장하고 피비 잉글리시, 몰리 고다드 같은 능력 있는 신인이 뜬 건 그나마 빅 4 패션 위크 덕분이었다.
각 브랜드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고 있다. 예컨대 베트멍은 패션 위크에 나가지 않고 스트리트 패션 사진 같은 룩북을 내놨고, 가레스 퓨는 이번 시즌 캣워크 쇼를 하지 않고 특별 제작한 영화를 상영한다. 나르시스 로드리게즈는 몇 명만 초대해 프라이빗한 쇼를 열기로 했다.
패션 위크 쪽에서도 타개책을 찾고 있다. 뉴욕의 경우 많은 브랜드가 파리 같은 다른 도시로 캣워크 쇼를 옮겨 버려 규모가 축소됐지만, 이번 시즌엔 많은 중국 디자이너가 쇼를 열었다. 공식 스케줄에 들어 있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중국 디자이너 31명이 뉴욕 패션 위크 기간 쇼를 열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무슬림 디자이너 6명도 쇼를 열었다. ‘빅 4’ 출신이 아닌 디자이너가 세계적 명성을 얻으려 진출하는 첫 기착지로 뉴욕이 자리 잡는 분위기가 있다.
밀라노와 파리의 패션 위크는 아직은 견고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추세는 변하기 어렵다. 빅 브랜드도 존재의 기반과 의미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분명 다가오고 있다.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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