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서 행정처 재편 등 개혁 비전 제시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이 26일 취임사에서 대법원장 권한 분산과 대법관 다양화를 예고했다. 김 대법원장은 내홍에 휩싸인 법원 조직을 결집시키는 한편 ‘제왕적 대법원장’을 내려놓고 법원행정처를 재편하는 등 사법개혁 전반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대법원장에게 부여된 권한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한 사람의 고뇌에 찬 결단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을 따라야 한다”며 권한 분산을 시사했다. 사법행정권 남용사태 단초가 된 올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에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 축소가 주제로 등장하는 등 법원 조직 내 개혁요구가 적지 않았다.
김 대법원장은 또 “대법원은 최종심이자 법률심으로서 사회의 규범적 가치기준을 제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법원 판결에 사회의 다양한 가치가 투영될 수 있도록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13명 제청권과 헌법재판관 3명 지명권 등 막강한 인사권을 쥔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 퇴임하는 김용덕ㆍ박보영 대법관 후임 인선 과정에서 인사권을 적극 활용,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에 편중됐던 대법원 구성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사법부 관료화’ 원인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 재편도 언급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이 재판 지원이라는 본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을 실천하겠다”며 “사법행정에 관한 의사결정 및 집행과정에서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춘천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 업무를 판사들이 자발적으로 분담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던 김 대법원장이 어떤 형태로 법원행정처에 메스를 댈지 주목된다.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이 현실화되면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이 인사에서 일선 판사들보다 혜택을 보던 관행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또 “사법의 본질적 역할은 사회적 갈등을 법치주의 틀 안에서 공정하고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인데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와 진영을 앞세운 흑백논리의 폐해는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넘어 급기야 법관마저도 이념의 잣대로 나눠 공격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이어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겠다”고 법관 독립의 의지를 단단히 했다.
충실한 재판과 전관예우 해소 등 불신 요인 차단, 상고심 제도 개선 등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한 비전도 언급했다. 김 대법원장은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 불신에 대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재판의 전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러 불신의 요인들을 차단할 방안을 강구하고 보다 수준 높은 윤리 기준을 정립하겠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쏠리는 상고사건을 해소하고 상고심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상고허가제와 상고법원, 대법관 증원 등 여러 방안을 개방적인 자세로 검토하겠다고도 밝혔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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