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선글라스 등 일상 사물이 소재
5년 만에 국내서 개인전 열어
물이 담긴 유리잔이 유리 선반에 놓여 있다. ‘이건 더 이상 물이 아니라 참나무다. 색, 느낌, 무게, 크기를 바꾸지 않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요지의 설명과 함께. 개념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76)의 설치작품 ‘참나무’(An Oak Treeㆍ1973)다. ‘작품을 만드는 건 대상이 아닌 작가의 의도’라는 화두를 던졌다.
작가의 ‘무제(선글라스 부분)’(2016). 대형 알루미늄 판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선글라스다. 작가는 이번엔 선글라스의 색과 느낌, 무게, 크기를 바꿨다. 오른쪽 안경테 일부와 코받침, 다리만 슬쩍 보이는데도, 화면이 온통 낯선 보라색인데도, 우리는 선글라스라는 걸 알아본다. 상상력과 기억, 정보 덕분이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는 건 보는 이의 상상력’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작가의 개인전 ‘올인올(All in all)’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5년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회화 최신작 30여점이 나왔다. “예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특별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참나무’에서 ‘무제’까지, 약 50년이 흐르는 동안 작가의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추적하는 그의 소재는 여전히 평범하고 흔한 물건이다. 갤럭시 스마트폰, 맥북에어 컴퓨터, 일회용 커피컵과 USB까지, 최근 소재엔 디지털 시대가 담겼다.
작가는 사물을 클로즈업하거나 일부만 확대해 검정 테두리를 그리고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칠했다. ‘무슨 물건인지 맞춰 보라’고 퀴즈를 낸 것일까. “아니다. 보는 이가 즉각 알아차릴 수 있게 그린다. 대량생산 제품을 그리는 건 세계 공통의 언어라서다. 사물의 보편적 특성을 추출해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정도로 단순화시킨다. 나는 조금만 표현하는데 보는 이들이 많은 걸 이해하고 감상한다. 인간에게만 있는 그 능력은 기적과 같다.”
간결한 선과 면으로 구성된 사물 이미지가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건 과감하게 쓴 동화적 색채 덕분이다. 진홍색과 초록색을 입힌 배구공, 분홍색 전구, 빨간색 테니스 라켓을 보는 순간 무슨 추억이라도 떠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색을 일부러 만들지는 않았다. 문구점이나 아트숍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감을 거의 그대로 썼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정지된 회화를 보며 잠시라도 쉬어 가기 바란다.”
아일랜드 태생인 작가는 미국 예일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젊은 예술가를 길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와 줄리언 오피, 게리 흄 등 yBA(젊은 영국 예술가) 그룹을 배출해 영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통한다. 지난해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작가로서 내 최고 전성기는 지금이다.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와야 작품을 중단할 것이다.” 전시는 11월5일까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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