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묘미는 누가 뭐래도 골이다. 그리고 골을 넣을 확률이 가장 높은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언젠가부터 심각한 스트라이커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소속 팀에서 올 시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공격수가 태극마크를 다는 게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신태용(48) 국가대표 감독은 25일 다음 달 유럽 평가전에 나설 23명의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이번 대표팀은 유럽, 일본, 중국에서 뛰는 해외파로만 꾸려졌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는 지난 6월과 8월, 두 차례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을 위해 대표팀 조기소집에 응해준 탓에 이번 A매치 기간에 리그 일정을 진행해야만 한다. 신 감독은 “그 동안 양보해 준 K리그와 상생을 위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신태용호의 최전방 공격수에는 황의조(25ㆍ감바 오사카)와 지동원(26ㆍ아우크스부르크)이 뽑혔다.
이 중 지동원은 올 시즌 소속 팀 출전 횟수가 ‘제로’다. 지난 5월 20일 호펜하임전 이후 프로 무대에서 공식 출전 기록이 없다. 국가대표로는 지난 6월 카타르와 최종예선 원정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신 감독도 달리 대안이 없었다.
황희찬(21ㆍ잘츠부르크)은 부상이고 얼마 전 프랑스 프로축구 트루아로 이적한 석현준(26)도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신 감독은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스트라이커 중에 뛰지 못하는 선수가 있어 고민이다”며 “지동원과 황의조는 꼭 점검해보고 싶었다. 차두리(37) 코치를 독일에 보내 지동원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몸은 좋다고 한다. 대표팀에 들어오고 싶은 열망도 높다. 러시아 월드컵에 갈 수 있는 선수인 지 제대로 테스트를 해 보겠다”고 설명했다.
한국 축구는 요즘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연일 질타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부족한 골 결정력이 팬들을 가장 분통터지게 한다. 이란-우즈베키스탄과 최종예선 마지막 두 경기에서도 연속 무득점이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탁월한 골잡이가 사라진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K리그에서 최전방은 외국인 선수들이 점령한 지 오래다. 스트라이커는 유럽 진출도 어렵고 우여곡절 끝에 나가도 성공 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미드필더를 중시하는 풍토도 유망주들이 공격수를 외면하는 현상을 부채질했다. 한국 축구의 대표 스트라이커였던 FC서울 황선홍(49), 울산 현대 김도훈(47) 감독이 나란히 기자회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스트라이커 기근에 대해 묻자 두 사령탑 모두 뚜렷한 원인과 해법을 내놓진 못했다. 다만 “공격수 출신 감독으로서 좋은 후배들을 길러내도록 노력 하겠다”며 사명감을 강조했다.
일부 팬들은 지동원을 선택하고 이승우(19ㆍ베로나)를 외면한 신 감독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한다. 신 감독도 이승우 발탁을 염두에 뒀다. 하지만 이승우는 지난 달 30일 베로나 이적 후 한 달 가까이 게임을 뛰지 못하다가 명단 발표 당일 라치오전에 후반 교체 출전해 처음으로 20여 분을 소화했다. 합격점을 받았지만 신 감독은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 감독은 “이승우와 백승호(20ㆍ지로나), 이진현(20ㆍ오스트리아 빈) 등 어린 선수들은 새로운 팀에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셋 모두 장래성이 촉망되는 선수인 건 분명하다. 코칭스태프를 풀가동해서 살펴보고 언제든 기회가 되면 뽑아서 쓰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 감독은 지난 해 리우 올림픽 사령탑 때만 해도 공개적으로 “이승우는 더 성장해야 한다”고 발탁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1년 이상 지났고 지난 6월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생각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승우 역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는 꾸준히 뛸 수 있는 팀을 찾아 바르셀로나를 과감하게 떠났다. 또한 이승우는 예전에 170cm의 작은 키를 지적 받으면 “작아서 이승우다”고 답하곤 했다. 순발력과 스피드, 기술, 영리함으로 작은 키를 커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키가 크면 농구를 해야 한다. 축구와 키는 상관없다”고도 당차게 말했다. 하지만 U-20 월드컵을 치르며 피지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이승우 아버지 이영재 씨는 대회 직후 “승우가 가슴 근육을 더 두껍게 만들어야겠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이승우가 꾸준히 소속 팀 경기를 뛴다면 이르면 11월 국내 평가전 때 태극마크를 달 가능성도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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