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의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에서 승전고를 울렸지만 도시바의 경영권에는 변동이 없어 세계 반도체 시장이 폭풍전야에 들어갔다. 이번 주 SK하이닉스의 최후 협상 결과에 따라 기존 반도체 업계 지형이 요동칠 전망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한미일 연합은 특수목적법인 ‘판게아(Pangea:2억5,000만년 전 하나로 합쳐져 있던 대륙)’를 설립해 도시바메모리의 지분 전량을 넘기기로 했다.
도시바는 판게아에 3,505억엔(약 3조5000억원)을 재출자하고 일본 은행들의 융자 등으로 판게아 지분 40.1%를 보유한다. 일본 기업이 10%, 베인캐피털 컨소시엄 몫이 49.9%다.
베인캐피털이 확보한 49.9%를 도시바메모리의 주요 고객인 애플 델 시게이트 등이 자금투자를 통해 나눠 갖게 된다. 구체적인 투자금액과 지분율은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올해 초 도시바는 지분 50% 이상을 매각한다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영권을 유지하게 됐다. 이번 매각이 도시바메모리에는 재기의 발판으로 작용할 여지가 커진 셈이다.
도시바는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2차원(D)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처음 상용화한 기업이다. 3D 낸드플래시 주도권은 독자기술로 V낸드를 개발한 삼성전자에 빼앗겼어도 원천기술이 풍부해 경영만 안정되면 빠르게 도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은 도시바메모리를 키워 삼성전자의 독주 견제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올해 2분기 도시바메모리의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16.1%로 2위였지만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의 전체 생산량은 삼성전자를 앞선다. 절반이 3위 기업인 미국 웨스턴디지털(15.8%) 자회사 샌디스크 브랜드로 출하되기 때문이다. 자체 생산시설이 없는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와 갈라설 경우 낸드플래시 업계에서 존재감이 사라질 수도 있다.
미국 기업들이 판게아에 직접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는 것과 달리 도시바메모리와 업종이 같은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털에 대출 형식으로 자금을 투입한다. 일본 사회의 기술유출 우려도 있어 표면적으로는 경영 참여가 어렵다. 향후 지분 취득을 통한 SK하이닉스의 의결권도 15%로 제한될 것으로 알려져 도시바메모리 원천기술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특허를 활용하기 위해 SK하이닉스는 무조건 인수전에 뛰어들어야 했다”며 “이르면 이번 주 안에 결판날 최종 협상에서 어떻게든 실익을 확보하는 게 남은 과제”라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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