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발표된 뒤 우리 사회는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와 편의를 우선할 것이냐 환경과 안전을 먼저 생각할 것이냐를 놓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사사건건 맞서고, 지역에서는 발전설비 건설을 둘러싸고 정부, 민간 발전사업자, 지역주민이 충돌한다. 이에 이 분야 권위자인 ▦김종달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겸 에너지환경경제연구소 소장 및 대구솔라시티센터장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환경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19일 한국일보에서 만나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인한 갈등,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이들은 정부 주도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능과 역할, 책임을 나누고 주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새로운 발전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사회=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그동안 에너지 정책 중앙정부가 주도
탈원전 성패는 지역사회 참여에 달려
지자체ㆍ주민이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에너지 산업 대기업 독점 탈피해야
사회=현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이념 대립으로까지 확대되는 듯해 불안하다. 이렇게 과격하게 대립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종달=에너지 전환 정책이 내놓을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이 확실치 않아서 생기는 두려움 때문이다. 반면 원자력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현실이다. 또 현재 친원자력계 인사들은 ‘원자력 레짐’이라 표현할 정도로 산업과 기술, 행정 등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어 관련 이슈에 대해 더 커다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치 않은 미래상을 내세우며, 변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많은 사람은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은재호=탈원전을 둘러싼 갈등 속에는 진보 보수 간의 진영 논리가 숨어있다. 그것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우선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위험성은 객관적인 데이터보다 주관적인 지각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는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매우 크다. 원전 산업이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한 번도 그 위험에 대해 국민에게 솔직히 발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신뢰나 불안 사이에서 토론을 통해 간극을 좁히기 힘들다. 갈등의 두 번째 원인은 결정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의 부재다. 그 동안 원전 건설을 결정할 때 공론화나 표결로 결정한 적이 없다. 최초 원전 건설 이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의심한 정부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새 정부가 탈원전을 천명하자, 친원전 진영에서 이번에는 국회에서 결정하자, 국민투표하자고 말한다. 이제라도 정당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에너지 정책을 만들게 되면 친원전 진영도 과거처럼 원전마피아라는 말을 듣지 않고 떳떳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익의 불균등 배분 구조를 균등구조로 바꾸는 과정이 기득권자의 반발을 초래해 갈등을 일으키는 세 번째 원인이다. 네 번째는 가치의 차이다. 에너지 정책 뒤에는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비전이 투사돼 있다. 친원전 측은 경제성의 논리를 우선시하고, 반원전 측은 환경, 생태계 등 공동체 가치가 크게 본다.
사회=현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의 역사적 의미는.
김종달=에너지원의 다양성을 갖춰야 전력공급도 안정되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좋은데 너무 편중돼 있었다. 현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다양성을 추구해나가면서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것, 민주적 에너지 시스템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시민들이 에너지원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원전에서 나온 전기를 안 쓰지 않겠다고 하는 식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겐 그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은재호=투명성과 지속발전 가능성이라는 가치도 찾아볼 수 있다. 그동안 에너지 정책에 대해 정부가 국민과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소수 전문가 집단을 넘어서서 국민에게 모든 걸 공개하기 시작했다. 또 원전은 결국 폐기물 처리 등 골치 아픈 문제를 미래 세대에 넘기고 현재 세대가 값싸게 혜택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성하고 지속발전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것도 의미 있는 것이라 본다.
유승훈=정부의 석탄발전 축소 방침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올 3월 서울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기가 안 좋은 도시로 꼽혔다. 2000년부터 온실가스 배출 증가 속도를 보면 우리나라가 터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석탄 연소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2000년 이후 압도적으로 1위다. 환경을 중시하는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서 석탄발전 비중을 줄이겠다고 천명한 것도 평가 받을 만하다.
보혁진영 대립이 탈원전 갈등 증폭 이유
원전 건설 때마다 민주적 절차 부재 탓
국민들 원전 위험성에 대한 인식 차 커
투명한 절차 통해 사회적 합의 이끌어야
사회=정책 추진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김종달=가장 시급한 것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산업 부분에서 에너지 낭비 관행이 많이 남아있다. 전기요금이 싸니까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산업 부분의 전력사용 효율 개선을 통한 수요 감소가 급선무다. 에너지 전환을 이루려면 에너지 산업 분야 구조 개편도 필요하다. 한전 등의 공기업과 공공기관, 정부 내 조직도 변화해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 보급을 촉진할 제도 변화도 이뤄져야 한다.
유승훈=정부가 지지율을 의식해서인지 전기요금 인상이 당분간 없다고 하지만 이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다. 현재 원자력과 석탄에 비해 신재생과 LNG의 발전 단가가 높으니 어느 정도 오를 수밖에 없다. 환경과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선 비용이 다소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솔직히 밝히고,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산업계도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서 전기요금을 서서히 올리는 것이 좋다.
사회=에너지 전환정책에 있어서 에너지 선진국과 한국의 차이는 무엇인가.
김종달=한국은 신재생 보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아직 에너지 분야에선 그러지 못했다는 하나의 지표라 할 수 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석탄발전 비중이 너무 높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 전력을 충분히 공급하고도 남을 정도의 잠재력이 있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를 20%로 늘리고 원자력과 석탄 비중을 줄이면 선진국형 에너지 믹스와 비슷하게 된다. 그렇다 해도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여전히 유럽, 미국, 일본보다 아주 낮다.
유승훈=세계에너지기구(IEA) 전망에 따르면 2030~2040년이 되면 석탄화력ㆍ원자력 발전의 비중은 축소되고 LNG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중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은 크게 확대된다. 전체적으로 신재생, LNG, 석탄, 원자력이 서로 비슷하게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글로벌 트렌드다. 7차 전력수급계획에선 석탄, 원자력은 대거 늘리고 LNG는 3분의 1로 줄이며 신재생은 완만하게 늘리는 것이 목표였다. 글로벌 트렌드와 거꾸로 가는 정책이 시행됐던 것인데 이번 정부가 에너지 전환을 통해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독 에너지 부문에서만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건 기업 친화적 정책 때문이었다. 그간 정부는 기업에게 싸게 전기를 줄 테니까 산업을 활성화하고 고용을 창출하라고 요청해왔다. 그래서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을 대거 진입시킨 것이고 심지어 이명박 정권 때는 전력을 원가 이하로 공급하기도 했다.
사회=에너지 공급과 소비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종달=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에너지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 그동안 에너지 정책은 중앙정부에서만 이뤄지고 지자체는 통계 정도만 내주는 식이었다. 지역 주민들이 프로슈머(생산과 소비를 겸하는 생산소비자)가 되려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중앙 정부가 아니라 시청과 군청에서 주도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 간의 역할과 권한의 변화가 이뤄져야 하고 시민들도 단순히 소비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생산해서 소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대기업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생태계도 만들어야 한다. 에너지 산업을 한전이 지배하면 안 된다. 에너지 공기업부터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은재호=패러다임 전환에서 정책적 개입이 중요하다. 영국은 에너지공동체 전략을 2014년 발표했다. 영국 정부의 유도로 에너지협동조합이 확대됐는데 정부는 사업모델만 제시한 뒤 지역 주민들이 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프로슈머가 될 수 있도록 법적 기반과 재정ㆍ정책적 지원을 해줬다. 독일에도 에너지협동조합이 많다. 이처럼 우리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느냐에 따라서 에너지 전환 정책의 속도와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유승훈=수도요금이 지자체별로 가격 편차가 큰데 전기요금 체계는 전국이 단일하다. 한전의 기능 중 일부를 지자체로 이양하게 되면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를 시행할 수 있다. 국민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1%도 안되는 신재생, 20%까지 늘려야
주민 힘만으론 부족, 한전 등 역할 필요
신규 석탄발전소 9기 중 8기가 민간사업
LNG로 전환 유도하고 적절한 보상을
사회=정부가 소홀히 하는 게 있다면.
김종달=에너지 전환이란 에너지원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담을 수 있도록 제도 변화도 함께 가야 한다. 우선 특정 에너지원에 집중하는 지원 정책부터 바꿔야 한다.
유승훈=한마디로 킬로와트(㎾) 계획에서 킬로와트시(㎾h) 계획으로 바꿔야 한다. 설비를 어떻게 갖출 것인가가 아니라 설비운영을 어떻게 효율화할 것인가를 중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화력발전과 원전은 건설비용이 비싸도 일단 완공하면 발전 단가가 낮아 거의 100% 가동된다. 반면 친환경적이지만 발전비용이 비싼 LNG 발전소는 평균 가동률이 40%도 안 된다. 이러한 상황이 유지되면서 화력발전소의 미세먼지 발생량은 더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설비 구성에만 초점을 맞춰왔고 전력시장 운영제도는 개편하지 않았다. 이제 전력시장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하다. 경제성만 우선시했지만 앞으로는 환경과 안전도 고려해 전기 단가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김종달=전력관리가 가동률 중심으로 바뀌려면 설비구조가 탄력적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원전은 한번 가동하면 멈추기가 어렵고 재가동에 시간이 오래 걸려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미래의 에너지는 필요할 때 발전해서 쓰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사회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면 에너지 시스템도 탄력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변화에 사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사회 곳곳에서 진행되는 당장의 갈등도 대책이 필요하다.
김종달=정부가 국민에게 에너지 전환에 대해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친다고 해서 현재 벌어지는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환 과정에서 관련 산업과 인근 주민들이 사회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떠안지 않도록 도와주는 정책이 중요하다. 에너지전환기본법 같은 관련 법규도 만들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약점은 주민 수용성이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지역 주민이 반대하면 지자체에서 허가해주지 않는다. 주민들에게 태양광ㆍ풍력발전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ㆍ동의를 끌어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이든 공동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주민참여형 사업이든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사업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피해는 지역 주민이 떠안고 이익은 국가나 기업이 전부 가져가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
은재호=밀양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한전과 주민 간의 갈등은 기존의 에너지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이다. 밀양은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곳도 아니고 단지 대도시로 전기를 배송하는 경과지인데 주민들이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고 손해만 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든 기피시설이든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치하거나 이익이 돌아가게 되면 저항이 줄어든다.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이익공유를 넘어서는 주민 수용성을 갖춰야 한다. 신재생에너지가 도입되더라도 지역 공동체가 소유ㆍ운영 등을 갖추지 못한다면 갈등이 생긴다. 전북 완주군 덕암마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만들어놓고도 공동체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이 안 돼서 문제가 생겼다. 또 신재생에너지든 다른 에너지원이든 정부가 사업을 시행하기 전 지자체의 역할과 책임, 기능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줘야 한다. 시설을 수용하게 될 주민들에게는 이 사업이 왜 필요한지 처음부터 의사결정 과정을 개방하고 이익을 공유하게 만드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승훈=정부가 설정한 신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협조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 생산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 되는 데 이를 20%로 늘려야 한다. 지금 상황에선 자본과 노하우를 갖춘 한전 같은 기업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2030년까지 20%를 채우기는 어렵다.
은재호=한전을 배제하기보다 한전의 업무 프로세스를 바꿔서 사회적 수용성을 우선하도록 해야 한다.
유승훈=신규 석탄발전소 9기 중 민간 발전사업자가 짓고 있거나 착공을 준비 중인 것이 8기인데 정부가 이를 LNG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이미 투자된 금액이 많아서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그냥 짓게 하든 아니면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주든 특별법이나 에너지전환법에 조항을 넣어서 민간기업에 보상을 해주는 게 맞다.”
정리=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KNEA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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