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 반발… 미국·EU도 반대 입장
국가 탄생으로 이어지긴 힘들어
자치권 확대 등 정치적 협상용 시각
‘나라 없는 세계 최대 소수민족’ 쿠르드족의 오랜 숙원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첫 발걸음이 25일(현지시간)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KRG)의 분리독립 주민투표 개시와 함께 내디뎌졌다. 터키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4개국을 중심으로 흩어져 사는 전체 쿠르드족이 아닌,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대상으로 실시된 투표이긴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중동 지역 전체의 역학 구도가 크게 변할 수 있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APㆍ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라크 정부로부터 KRG의 분리독립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이날 오전 8시 1만 2,072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는 KRG가 군사ㆍ외교 등 폭넓은 자치권을 행사하는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야, 도후크 등 3개주와 쿠르드계 주민이 많은 키르쿠르주, 니네베주 등의 쿠르드족 530만여명이다. 인접 국가들의 거주민까지 합한 전체 쿠르드족 3,500만여명(추산)의 15%가량에 달하는 규모다. 투표 종료(25일 오후6시) 이후 24시간 이내에 나올 개표결과에선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을 게 확실시된다. 이에 앞서 23일 시작된 재외 유권자 투표(유권자 15만명 추정)에선 무려 98%의 찬성표가 나왔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이라크 쿠르드족으로선 ‘역사적인 독립 선언’이지만, 이라크 중앙정부는 물론 주변 인접국들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하이데르 알 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TV 연설에서 “(KRG의 일방적 투표는) 헌법 위반인 데다, 시민들의 평화에도 반한다. 국가의 단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투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라크 정부는 전날 이미 KRG 내 국경초소와 국제공항 등의 반환을 요구했고, 키르쿠크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국제거래 중단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자국 내 쿠르드족의 동요를 우려하는 터키와 이란 등의 반발도 거세다. 쿠르드족 최다 거주국(1,800만명)인 터키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과 인접한 자국 국경의 검문을 대폭 강화했다. KRG의 석유 수출길인 터키 하부르 국경검문소의 출ㆍ입경이 차단될 것이라고도 위협했다. 이란도 이라크 정부 요구에 따라 쿠르드 자치지역에서 이란 영공을 지나는 모든 항공편 운항을 전날부터 전면 중단했다. 아울러 이스라엘을 제외한 미국과 유럽연합(EU), 유엔 등 국제사회도 이슬람국가(IS) 격퇴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면서 반대 입장을 일찌감치 표했다.
때문에 이번 주민투표 결과는 ‘쿠르디스탄’이라는 새로운 국가 탄생보다는 일단 KRG의 자치권 강화 등을 위한 협상력 강화의 발판으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도 “주민투표는 국경을 그리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쿠르드족 사람들이 미래에 무엇을 원하는지 정하는 첫 걸음이며, 우리는 바그다드(이라크 중앙정부)와 ‘긴 대화’의 과정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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