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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대권 후보 20명 대접전…민주화, 경제부흥 ‘시험대’

입력
2017.09.23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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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분쟁으로 14년간 내전 홍역

현 대통령 사회통합 성과 불구

작년 GDP 마이너스 성장 진통

현 부통령 등 3강 1중 구도

부동층 40%달해 예측 불허

“경제발전 이끌 리더십 필요”

“이번 선거는 라이베리아가 전쟁과 무질서로부터 평화와 안정으로 확고하게 전환됐는지를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영 일간 파이낸셜타임스)

인구 450만명의 서아프리카 소국 라이베리아에서 내달 10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하원 73석)는 잔혹했던 내전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이 나라의 앞날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재임 중(2011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던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이 연임(12년) 기간 닦아 놓은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착근할 수 있을지, 최빈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가 경제를 어떻게 부흥시킬지는 오롯이 새 지도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승리를 거둔다면 내전 이후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내전 후유증 설리프 12년 통치가 치유

라이베리아 정치는 인종 갈등, 내전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미국 흑인 노예들이 이주하면서 1847년 건국된 라이베리아는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으로 불리는 미국 흑인 노예 이주자 후손들이 150년 동안 토착민 후손들을 지배했던 나라다. 1980년 토착민 출신 군벌 사무엘 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인 윌리엄 톨버트 당시 대통령을 살해하고 토착민 출신으로 처음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이 비극의 뿌리가 됐다. 철권 통치로 번번이 쿠데타를 제압했던 도였지만, 1989년 반란을 일으킨 군벌 프린스 존슨에게 사로잡혀 귀가 잘리는 고문을 당한 끝에 살해당하는 등 정치 폭력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이주 노예 후손 대 토착민 후예의 대결에서 종족 분쟁으로 비화한 내전은 2003년까지 진행됐는데 14년 동안 내전 중 25만명이 학살됐고, 여성 70%가 강간 피해를 입을 정도로 잔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내전 당시 대통령이었지만 잔혹행위를 주도했던 찰스 테일러가 이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테러ㆍ살인 등으로 50년형을 선고 받으면서 종지부를 찍었지만, 라이베리아 공동체의 분열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커졌다.

내전이 끝난 후 치러진 2005년 대선에서 당선된 설리프 대통령은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만들어 사회통합에 진력하고, 정부의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등 내치 안정과 민주주의 향상에 기여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두 아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스스로도 정실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고질적인 부패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설리프 대통령 집권 이후 연 5% 이상 성장하던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5,000여명이 사망한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로 마이너스(2016년)로 고꾸라지는 등 집권 종반기에는 경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3강 1중… 포스트 설리프는 누가

라이베리아 대선은 1차 투표와 한 달 뒤 치러지는 결선 투표로 진행되는데 ‘포스트 설리프 시대’의 주인공을 꿈꾸며 출마한 후보는 11명에 이른다. 지난 8월 라이베리아 홀딩 컨소시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당인 통합당 후보 조셉 보아카이 현 부통령(21.7%)과 야당인 민주적 변화를 위한 회의(CDC)의 조지 웨아 후보(24.7%), 자유당 찰스 브룸스카인 후보(23.5%) 등이 3강을 형성하고 있고 전(全) 라이베리아당 베노니 유레이 후보(6.4%)가 이들을 추격하고 있다.

1980년대 농업장관을 지내고 설리프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부통령으로 12년을 일했던 보아카이 후보는 풍부한 행정경험과 안정감이 장점이며 정실주의 극복ㆍ부패추방ㆍ농업 경쟁력 강화 등을 약속하고 있다.‘설리프 후광 효과’로 여성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고령(73세)인 점과 정작 설리프 대통령의 적극적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는 점이 고민이다. 웨아 후보(현 상원의원)는 1995년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던 축구스타 출신 정치인. 변화를 바라는 젊은층 지지가 높고 2005년 설리프 현 대통령과 겨룬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저력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학력 위조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고 ‘뜨거운 감자’인 테일러 전 대통령 사면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법률가 출신으로 2005년에 이어 대통령에 두번째로 도전하는 브룸스카인 후보는 자신과 부통령의 월급을 30% 감액하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우며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사회기반 시설 확대, 정실주의ㆍ부패 추방 등을 약속하고 있으며 특히 교육정책 쇄신을 중점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유레이 후보는 라이베리아 제1통신사인 론스타 커뮤니케이션을 비롯, 러브 미디어 그룹을 지배하는 부호로 종종 라이베리아의 ‘베를루스코니’로 비유된다. 비즈니스맨 출신으로 ‘경제 대통령 후보’를 자처하며 인구 30%가 하루 1달러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파고들고 있다. 현지 매체들은 이번 선거가 현직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은 2005년 선거와 비슷한 양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매체 프론트 페이지 아프리카(FPA)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부동층이 40%에 달하는 등 어느 때보다 당선자 예측이 어렵다”며 “누가 되든 결선투표에서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예측했다.

라이베리아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가운데 지난 16일 수도 먼로비아에서 집권 여당 조셉 보아카이 후보 지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먼로비아=EPA 연합뉴스
라이베리아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가운데 지난 16일 수도 먼로비아에서 집권 여당 조셉 보아카이 후보 지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먼로비아=EPA 연합뉴스

사회 인프라 확장 요구 높아…예측 불허 접전

민주주의 정착만큼이나 이번 선거의 중요한 의제는 경제문제인 사회기반 시설 확충과 일자리 확보다. 수도 먼로비아를 제외하고는 보건ㆍ의료ㆍ교육 시설 등 기본적인 사회기반시설이 극히 열악하기 때문이다. 라이베리아의 실업률은 85%에 달하고 노동자 중 78%가 가사 노동 등에 종사하는 취약노동자다. 젊은이(15~24세) 56%가 영어를 한 문장도 읽을 수 없다.

라이베리아 북동부 봉 카운티의 광산노동자 다니엘 세이욘(21)은 “올해 초 먹고 살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광산에서 일하게 됐다”며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고 호소했다. 집권당에 실망했다는 그는 “안전모도 안전화도 없이 바위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탄광에서 일해야 한다”며 “젊은이들을 학교에 보내줄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라리아로 남편을 잃었다는 봉 카운티의 간호사 조이스 페유는 “지역 병원에 치료약이 있었으면 남편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다음달 선거에 기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베엔 사키(28)는 “1,000명이 사는 지역에 병원 한 곳 없다”며 “아플 때면 ‘신의 가호’를 빌 뿐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FPA는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교육 시설과 일자리 문제 해법을 가장 듣고 싶어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경제 성장이 없으면 모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라이베리아에 막 정착되기 시작한 민주주의가 경제문제 해결 없이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며 이를 ‘텅빈 민주주의’로 비유했다. 신문은 “필요한 것은 경제발전을 이끌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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