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 말장난, 불장난 변할 가능성
문재인 정부의 평화주의적 접근의 위험성
국민은 사자나 여우 같은 정부를 선호해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지만, 정작 사태는 우리 믿음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totally destroy)”는 게 말장난만으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트럼프를 ‘깡패두목’이라고 비판했고, 트럼프는 앞서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희화화했다.
김정은이 가만있을 리 없다.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아마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상에서 하는 것으로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점입가경이지만 구경만 하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사람은 물론, 국가 간에도 말싸움은 종종 몸싸움으로 번진다.
궁금해진다. 미국이 북한 타격을 계획했을 때 국내에서 가장 감지를 빨리 하는 곳이 어딜까. 아무래도 내 수준에서는 주한미군 사령부겠다. 그래서 주한미군 사령부의 고위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트럼프도 믿지 못하는데 그를 믿을 수 있겠냐는 의심도 없지 않았다. “남북한이 정전 중인 점을 감안하여 주한미군은 과거 수십 년 동안 비전투원 소개(NEOㆍ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 훈련을 연중행사로 해 왔다. 그러나 소개령은 함부로 나올 수 없다. 그 파장이 한국민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존재하는 한, 전시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발동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예고된 전쟁’이 아닐 때는 다르다. 어차피 이런 질문 자체가 우리 안보가 남의 나라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 허탈하다. 조선 말기처럼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움직임에 종속되는 신세는 한 세기가 훨씬 지났어도 바뀐 것이 없다.
미국의 마지막 카드는 군사옵션이고, 걱정스런 징조는 많다. 사실 2차 대전 이후 가장 호전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각종 대규모 전쟁에 개입했다. 더구나 트럼프는 배경에 군산복합체가 있다고 의심받는 인물이다. 온전한 믿음이 가지 않는다. 트럼프는 이란과 서방 간 극적으로 타결했던 ‘이란 핵 합의’도 깰 요량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6개국이 개입된 합의가 휴지가 된다.
더욱이 만약 트럼프가 미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익을 좇는다면 어떨까. 미국의 지식인들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일부는 그렇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일가가 대표적이다. 전쟁 성향이 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과 미국과의 전쟁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늘 무기업자들은 전쟁을 선호한다. 수십만 마일 떨어진 다른 국가의 인명피해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그런 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연설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한 것은 순진하고 잘못됐다. 레이건이 대화를 강조한 듯 보이지만 힘의 우위가 전제였다. 레이건은 구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몰아붙이며 ‘스타워즈’라는 전략방위구상(SDIㆍ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밀어붙여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이다. “1980년대 레이건의 군사력 증강은 구소련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는 핵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냉전 종식이었다.”(토마스 소웰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마음이 따뜻한 자들은 피를 많이 흘리지 않고도 적을 무장해제시키고 무릎을 꿇릴 기발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명백한 오류다. 순진함으로부터 나오는 실수가 가장 치명적인 영역이 바로 전쟁이다”고 했다. 지금은 마키아벨리의 리더십에 대한 지적이 적절해 보인다. ”사자는 늑대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으며 여우는 위기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우리 국민은 사자와 여우 같은 정부를 원하는 것 아닐까.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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