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스스로를 고립과 몰락으로 이끄는 무모한 선택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도 높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모든 나라가 안보리 결의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상응하는 새로운 조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동안 북한 도발에 대해 단호한 응징을 공언해 왔던 연장선이다.
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 북한에 대해 “완전 파괴” 등 초강경 경고를 발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연설에 비해서는 강도가 훨씬 약하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발적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연설 전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 등 미국의 원로 한반도 전문가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이 군사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 “동북아 안보의 기본축과 다자주의가 지혜롭게 결합돼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만으로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 나가기는 어렵다. 누누이 지적했듯, 제재와 압박은 궁극적으로 대화로 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이다. 또한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는 것은 제재와 압박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를 상정한 카드다. 군사적 충돌이 우려된다면 거기까지 가지 않도록 제재ㆍ압박을 더욱 옥죄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는 그러한 의지가 뚜렷하게 담기지는 않았다. 유엔사무총장과의 면담이나 유럽 정상들과의 양자회담에서도 문 대통령은 평화와 대화 중재만을 얘기했을 뿐 제재와 압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유엔 다자무대 데뷔 의미도 있었다. ‘베를린 구상’이나 ‘한반도 운전자론’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방안이나 메시지가 기대됐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인상적 메시지를 던지지 못한 채 기존의 ‘제재ㆍ압박-대화’ 병행 주장을 되풀이한 수준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다. “유엔정신의 전면적 실현”과 “평화의 지속화” 등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실천적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말의 성찬으로는 한반도 문제를 풀어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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