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사택 아파트서 목 매
검찰 “유감이지만 수사와 무관”
하성용 前사장 10여개 혐의 영장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위 임원이 21일 숨졌다. KAI 경영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유감이지만 수사와는 무관한 일”이라면서도 수사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은 이날 하성용(66) 전 KAI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인식(65) KAI 해외사업본부장(부사장)은 이날 오전 8시42분쯤 경남 사천시 직원숙소용 아파트 베란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평소 출근시간보다 1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안 되자 아파트를 찾아간 직원이 신고했다.
A4용지 석 장 분량 자필 유서가 거실 탁자 위에 있었다. KAI 비리 수사 ‘몸통’인 하 전 사장과 직원들에게 ‘내가 맡고 있는 사업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 열심히 하려 애썼는데 결과가 안 좋아 안타깝다’는 취지의 내용을 남겼다고 전해졌다. 가족에게는 ‘미안하다’고 썼다고 한다. 김 부사장이 마신 것으로 짐작되는 맥주병과 소주병도 있었다. 다만, KAI 수사를 언급한 부분은 없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KAI 관계자와 김 부사장 지인들은 대체로 “하 전 사장이 긴급 체포돼 각종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고, KAI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닥치자 (김 부사장이) 엄청난 심적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AI 관계자는 “김 부사장은 강한 책임감과 업무능력 등으로 사내 평판이 좋았다”며 “직원들이 망연자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검찰은 김 부사장이 KAI 경영 비리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하 사장 등에 대한 수사에는 별다른 차질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부사장을 조사하거나 소환 통보를 한 사실이 없고, 그럴 계획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KAI 비리 수사 목록에 해외사업 관련 회계사기(분식회계) 의혹이 포함돼 있는 만큼 그의 죽음이 향후 수사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부사장은 KAI수출사업본부장을 거쳐 2015년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승진해 수출사업 전반을 총괄해왔다.
검찰은 이날 하 전 사장에 대해 10여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 전 사장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과 관련해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식으로 수천억원대 회계사기를 저지른 혐의(주식회사의 외부감사법에 관한 법률 위반 등)를 받고 있다. 그는 또 협력사 대표에게 다른 협력사를 세우게 한 뒤 6억원 상당 지분을 차명 보유한 의혹(배임수재, 범죄수익은닉 등)도 있다. 그 외에 고위 공무원 자제 등 10여명을 부정 채용(뇌물공여와 업무방해)하고 수억원대 상품권을 횡령한 혐의 등도 있다. 하 전 사장은 협력사 지분을 차명보유하고 그 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에 대해선 일정 부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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