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특근 이어 잔업 중단
1인당 年 100만원 임금 줄어
다른 제조업체에도 영향 줄 듯
기아자동차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오히려 근로자 임금이 줄어들게 됐다. 기아차는 지난달 말 판결 직후 특근을 없앴는데, 잔업도 전면 중단키로 한 것이다. 이로써 연간 차 생산이 3% 감소하고, 근로자 한 명당 연 평균 100만원 가량 임금이 줄어들게 된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제조업체 전반에서 재고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이런 결정이 기아차에 그치지 않고 국내 다른 제조업체들로 확산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기아차는 “25일부터 광주ㆍ소하리ㆍ화성공장에서 잔업을 전면 중단하고, 앞으로 특근도 최소화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며 “정부 방침대로 근로자 건강 확보 및 삶의 질 향상, 장시간 근로 해소에 부응하려는 목적”이라고 21일 밝혔다. 특근은 주문량을 정규 근로시간으로는 다 만들 수 없을 때 실시하는 연장근무다. 반면 잔업은 8시간 근무를 마친 후 10~20분 일을 더하는 개념이어서, 추가로 임금을 지급해왔다. 기아차는 현재 주야 2교대로 8시간씩 근무하는 ‘8+8시간 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25일부터는 8시간 정규근무 외 잔업시간으로 인정해 온 1조 10분, 2조 20분 등 총 30분이 줄어들게 돼 그만큼 임금이 축소된다.
기아차가 근무체계를 변경한 것은 전 세계적 불황과 사드 여파로 중국 판매 급감 등으로 생산량 조정에 나선 것도 원인이지만, 이 보다는 지난달 31일 기아차의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1심 판결이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심야ㆍ연장ㆍ휴일ㆍ연차수당이 동반 상승해 노조원 평균 연봉이 1억원 중반대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 나올 정도다.
사측이 급증하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당이 지급되는 작업을 없앤 것이다. 지난해에는 하루 30분 잔업을 해 노조원은 일인당 100만원대의 추가 임금을 받았다. 25일부터 잔업이 전면 중단되면 이 수당이 고스란히 연봉에서 빠지게 되는 셈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통상임금 1심 판결에 따라 장부상 1조원에 이르는 손실 충당금을 쌓으면, 3분기 영업이익은 적자”라며 “과거처럼 특근, 야근을 했다가는 만성적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아차는 판매가 회복돼 추가 생산이 필요해질 경우에도 신규인원 채용이나 교대제 개편, 직무 개선 등을 통해 잔업과 특근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에선 특근ㆍ잔업ㆍ연장근로 폐지로 줄어드는 생산량은 신규채용보다는 해외 생산기지를 통해 채우게 되리라고 전망한다. 기아차 국내 공장 가동율은 103.4%인 반면 해외는 99.1%이어서 해외 공장 추가 가동이 당장이라도 가능한 상황이다. 통상임금 판결이 기아차 근로자 임금상승이나 국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임금 하락과 해외로 일자리를 빼앗기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판이다.
한편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 이후 경쟁사의 임금인상에 자극받은 다른 완성차 노사의 임금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달 30일 3년 연속 무분규로 임금 협상 잠정합의를 도출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례적으로 노조 찬반투표에서 합의안을 부결하고 추가 제시안을 넣은 2차 합의안 마련에 나섰다. 한국지엠(GM)은 5일 첫 파업(4시간 부분파업)을 한 데 이어 14, 15, 18, 20일에도 각각 부분파업을 벌이며 노조 인상안에 부정적인 카허 카젬 신임 사장을 압박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인건비 상승을 막기 위해 국내 생산량을 줄이면 결국 근로자의 실질 임금 감소만이 아니라 협력사의 물량감소로 이어져 국내 자동차산업 전반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제조업체들도 비슷한 구도로 돌아서기 전에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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