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부동해진 미국의 북핵 위기 대응
갈피잡기 어려운 우리 모습과 대조적
모든 가능성 고려한 자위태세 갖춰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 연일 화제다. 그의 ‘무지막지한’ 전쟁 다짐은 충격적이었다. “숨통을 끊고” “박살을 내겠다”는 북한의 위협이야 숱하게 들었지만, 미국 대통령이 비슷한 말을 따발총 쏘듯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 나니 “북한 완전 파괴”의 어감이 사뭇 다르다. 앞뒤를 다 살려 들으니 묘한 안정감이 들 정도다. 특히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이란 가정에서 “완전 파괴”의 충격적 울림이 뚝 그친다. 우리가 수시로 그 허점을 걱정하며 미국에 요구해 온 핵우산을 펼치겠다는 데 불과하다. “미국은 준비도 돼 있고, 의지도 능력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게 되길 희망한다”는 말은, 미국이 여러 차례 발한 경고의 확인이기도 하다.
“외교적 수단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말까지 덧붙으면, 미국의 대북 정책 3박자가 한결 뚜렷하다. (1) 궤멸적 보복 능력을 포함한 철저한 군사적 대비 태세 (2)지속적 압박과 제재 강화 (3)외교적 수단에 의한 북핵ㆍ미사일 문제의 해결이 바로 그것이다. 수시로 바뀌는 듯하고, 화자에 따라 강조하는 대목이 다르기도 했지만, 이 3박자는 북핵ㆍ미사일 위기를 다루는 트럼프 정권의 확고한 정책기조라 볼 만하다.
이에 비추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도대체 무엇인지가 되레 혼란스럽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은 수단인 (2)와 목적인 (3)을 확실히 구분하게 된 듯하지만, 아직도 둘을 뒤섞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2)를 빠뜨린 논의가 꼬리를 물고 있다. 더욱이 (1)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란에 더해 정부 내 이견 또한 여전하다. 그 필요성이야 불을 보는 듯하지만, 구체적 방법과 수단, 대북 경고 표현의 강도 등은 저마다 다르다.
청와대의 ‘엄중 경고’로 송영무 국방장관의 TKO패로 끝난 ‘문ㆍ송 대결’이 좋은 예다. 송 장관의 언사는 국회라는 무대나 장관이라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투박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감정과 송 장관이 군인 출신임을 고려하면, 그의 언사만 문제삼을 건 아니었다. 전술핵이나 한미연합훈련 규모 등에 대한 두 사람의 이견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다만 송 장관의 국회 발언 3일 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송 장관의 ‘참수작전 부대’ 보고 등을 두고 “아주 잘못 됐다”거나 “부적절하다”고 지적해 송 장관을 자극했다. 특히 ‘참수작전 부대’와 관련, 영어 ‘Decapitaion’을 ‘참수’로 곧바로 옮기기보다 ‘궤멸’ ‘와해’로 에둘러 번역했어야 한다거나 북핵 방어를 위한 ‘4D(탐지, 교란, 파괴, 방어)’가 미국적 용어이며 “그런 용어로 작전계획을 만들면 미국 무기만 사게 돼 있다”고 엉뚱하게 지적함으로써 군인 출신이 갖기 쉬운 ‘문자 강박증’을 들쑤신 바 있다. “학자적 입장에서 떠든다”는 송 장관의 말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대북 정책기조가 미국과 다르다는 게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불분명하고, 그런 ‘소극적 불확실성’이 북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북의 6차 핵실험과 잇따른 중ㆍ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언뜻 미국을 겨눈 듯하다. 그러나 양측의 ‘말 폭탄’이 군사충돌로 번질 경우는 물론이고, 대화로 사태를 수습하게 될 때도 우리는 직접적 안보위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흔히 거론하는 ‘북미 평화협정’은 개념필수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예정하기 때문이다.
북미 군사충돌이든, 북미 평화협정과 미군철수 이후의 남침이든 전쟁은 북의 공격이나 그에 버금가는 도발행위로 촉발된다는 일방성(一方性)에 비추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분명하다. 빈틈없는 대비태세와 필사적 방어ㆍ반격의 각오를 끊임없이 과시하는 동시에 그것이 전술핵이든 독자 핵무장이든, 모든 가능한 억지수단에 대해 떠벌리지도 배제하지도 않는 ‘적극적 불투명성’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서울 불바다’를 막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게 우리한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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