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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노동’과 ‘근로’

입력
2017.09.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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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현행법상의 ‘근로(勤勞)’ 표현을 ‘노동(勞動)’으로 바꾸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발의자는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근로’에 밀린 ‘노동’이란 말부터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동’은 근대 초기 일본에서 ‘labor’의 번역어로 채택한 말로, 19세기말부터 우리말에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노동’과 ‘근로’의 쓰임을 보자.

“오늘은 졸지에 열두 시간에 무겁고 어려운 사무에 나아가는 노동은 불가하니…”(독립신문, 1899.9.27).

“이민자는 노동에 종사할 목적으로 외국에 가는 자...”(관보, 1906.7.12).

“이선득이가 본국에 와서 여러 해를 정부 상 일에 근로하였고 또 법규 교정하는 데 그 사람에게 후일을 바라는 것이 적지 않더니...”(독립신문, 1896.4.7).

위 기록을 보면 ‘노동’을 수용할 당시부터 이 말은 ‘근로’와 구분되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근로’는 ‘부지런히 일을 함’이라는 평가의 뜻이 담긴 반면, ‘노동’은 ‘육체나 정신의 힘을 써 일을 함’이라는 평가 중립적인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일을 하는 행위’와 ‘일을 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노동’과 ‘노동자’로 개념화되어 널리 쓰였다.

“지금 노동하는 동포 제씨들이 이같이 크게 분발함을 볼진대 장래 한국 노동자 중에 큰 영웅과 큰 인물과 큰 학문가가 날지며...”(대한매일신보, 1908.2.20).

<큰 사전>(1957)에서는 전통적 용법에 따라 ‘노동’과 ‘근로’를 구분하고 ‘노동자’만을 올림말로 삼았다. 그런데 산업화시기에는 공식적으로 ‘근로자’를 썼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만 필요한 시대에 ‘노동’은 불온한 말이었던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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