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설립 당시엔 거센 반발
“막상 들어서니 일반학생과 같아
되레 장애인에 대한 편견 사라져”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복도를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다 수업시간이 되면 교실로 들어가는 학생들. 19일 서울 관악구 난향동 삼성산 자락에 위치한 지적장애 특수학교인 정문학교 학생들의 모습은 여느 초ㆍ중ㆍ고교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최근 서울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원하는 장애아 부모들이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건은 가장 사회적 약자인 장애아동, 이들을 향한 집단이기주의의 칼날이 여전히 매서움을 실감한 계기가 됐다.
1997년 정문학교가 들어설 때도 비슷했다. 학교 설립 계획을 세운 뒤 서울시교육청의 주민 설명회가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고, 지역 주민들은 교육청 앞에서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때 반대했던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21년 전 교육청 앞 반대시위에도 나섰다는 박모(62)씨는 “학교가 들어서고 나서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서울에서 손에 꼽는 달동네였는데 이제는 길 건너에 신축 아파트도 생겼다”고 말했다.
장애아들에 대한 편견도 누그러졌다. 인근 슈퍼마켓 종업원인 민모(29)씨는 “한 달에 한 두번씩 선생님과 함께 물건을 사러 오는 학생들이 있는데 장애인이라기 보다는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처음 마주치면 막연하게 거부감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직접 겪어보면 귀여운 동생들이다”고 말했다. 민씨는 “특수학교 설립에 따른 불안감은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생기는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실제 특수학교 설립이 주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4월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가 교육부 의뢰를 받아 진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특수학교 인접지역(1km 이내)과 비인접지역(1~2km) 간의 땅값과 아파트가격 등은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으며, 오히려 특수학교 인접지역에서 가격이 오른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특수학교에 대한 주민반대는 집값 때문만은 아니다. 박씨는 “특수학교가 생기면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들도 통학을 위해 동네로 이사오면서 동네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저변에 장애가정에 대한 편견과 멸시가 깔려있었던 점은 분명하다. 그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정문학교 대부분의 학생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한 뒤 교문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고, 장애가정들이 학교 근처로 이사를 오지도 않았다.
학교는 지역주민들과 벽을 허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서울시의 주민참여예산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해 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학교 담장을 칠하기도 하고 인접한 금천구 탑동초등학교와의 통합교육도 매달 한번 꼴로 진행하고 있다. 2003년 창단한 교내 동아리인 실로폰앙상블은 매년 1~2차례 인근 학교나 지역 행사 무대에 선다. 허충구 정문학교 교감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장애를 모르는 주민들이 학생들을 이해할 기회를 만들고 있다”며 “실로폰 연주는 장애 학생들이 가진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잘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정문학교 학부모 김모(50)씨는 “특수학교 학생들은 교육받을 권리조차 갖지 못하고 학교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지역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교육받을 수 있게 해 주고 길에서 장애 아동을 만난다면 인사를 받아 주는 것.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