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7.1…인구 밀집 중부가 진원
경보 울리지 않아 속수무책 당해
초등학교 등 건물 40여개 무너져
어린이 등 사상자 급속도로 늘어
한국인 남성 1명도 건물 붕괴로 사망
2주 전엔 남부서 강진 98명 사망
“신이 우리에게 단단히 노한 것 같다.”
규모 7.1의 강진이 멕시코 중심부를 뒤흔든 19일(현지시간)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생존자 수색 작업을 돕던 정부 관료 호르헤 오르티스 디아스(66)씨가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말했다. 이날은 멕시코 국민 수천명이 희생된 1985년 대지진의 32주기. 대지진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한 만반의 준비도 대재앙 앞에선 무력했다. 디아스씨는 처참히 무너진 건물 잔해를 보며 멕시코시티가 마치 “소돔과 고모라(성경 속 신이 파멸한 도시) 같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15분쯤 멕시코 중부 푸에블라주 라보소 인근지하 51㎞ 지점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했다. 멕시코시티에서 남동쪽으로 불과 123㎞ 떨어진 데다 푸에블라주와 모렐로스주 등 인구 밀집 지역이 진원지를 둘러싸고 있어 사상자 수가 치솟고 있다. 현지 재난당국은 이튿날 오전 기준 사망자가 최소 225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약 2주 전인 7일 남부 치아파스주 인근 해상에서 규모 8.1의 강진(98명 사망)이 일어났을 때보다 높은 숫자로, 85년 이래 최대 피해다. 하지만 인명 피해가 집중된 멕시코시티에만 40여개의 건물이 무너져 희생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지진으로 한국인 1명도 사망했다. 외교부는 지진 당시 멕시코시티의 한인 소유 5층 건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이모(41)씨가 사망한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고 밝혔다.
실종자들이 무너진 건물 아래서 촌각을 다투는 사이 가족들의 속은 타 들어가고 있다. 특히 오후 수업이 한창이던 초등학교가 붕괴하면서 어린 학생들도 대거 매몰됐다. 현재까지 22명의 학생이 숨진 멕시코시티 남부 엔리케 레브사멘 초교에서 한 학부모는 “계속 아이들을 꺼내고 있는데 우리 딸은 아무 소식이 없다”며 오열했다. 그외 아파트, 공장 등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가운데 시민들은 삽과 곡괭이, 대형마트 카트 등 온갖 도구를 동원해 시멘트 조각과 철근 구조물을 옮기며 생존자 수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무너진 건물에서 유출된 가스 냄새가 거리에 자욱할 정도로 붕괴 여파가 심해 일부 현장에서는 구조 요원들이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참사는 대지진 32주기를 맞아 지진 대피 훈련이 이뤄진 직후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건너편 건물이 무너지는 걸 보자마자 4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와 목숨을 건진 유학생 발레리에 페레스(23)는 “오전 11시에 대피 훈련을 했는데 오후 1시에 진짜 지진이 났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지진 경보를 듣고도 훈련 상황으로 착각해 오히려 대피에 실패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지진 경보가 제대로 울리지 않았다는 증언도 쏟아지고 있다. 한 생존자는 “경보음이 전혀 울리지 않은 채 건물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멕시코시티의 경우 통상적으로 남부 치아파스주 등에서 지진이 발생한 후 중부 지역으로 진동이 전해지기까지 1분 가량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 경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처럼 진원이 멕시코시티 바로 인근에 위치할 경우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멕시코는 지진에 취약한 환태평양 조산대, 즉 ‘불의 고리’ 중에서도 3개의 지각판이 맞물리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어 위험이 상존해 있다. 한편 같은 날 마찬가지로 불의 고리에 위치한 뉴질랜드 남섬 세던 인근 해상에서도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했으나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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