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위기 처한 오래된 가게
서울시, 39곳 관광자원으로 활용
지도ㆍ영상 등 제작해 알리기 나서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금박연’은 156년째 조선 왕실의 금박 공예 기술을 간직한 공방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인 김덕환 선생과 아들 김기호씨가 이곳에서 한 땀, 한 땀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복 한 벌을 작업하는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 년이 넘게 걸리지만 자부심 하나로 5대째 조선 왕실의 금박 공예 기술을 지켜왔다.
서울시가 서울의 이야기를 간직한 오래된 가게, 노포(老鋪) 39곳을 발굴해 ‘오래가게’로 소개했다. 오래가게는 ‘오래된 가게가 오래 가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일본식 한자어 표기인 노포를 대신하는 순우리말이다.
시 관계자는 “오래가게는 다방, 고미술화랑, 떡집, 인장, 시계방, 수공예점, 레코드점, 한의원 등 생활문화와 전통공예 분야를 중심으로 구성했다”며 “이미 많은 매체로 홍보가 된 일반 요식업 분야는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금박연 외에도 3대째 운영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같은 국빈들이 이름 전각을 새긴 것으로 유명한 ‘명신당 필방’, 4대째 고미술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통인가게’, 47년째 같은 자리에서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만나분식’ 등 다양한 업종이 오래가게에 포함됐다.
시는 종로와 을지로 일대에 개업 후 30년 이상 운영했거나 2대 이상 전통을 계승한 가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람이 운영하는 곳을 대상으로 삼았다. 시민 추천과 자료 조사를 통해 2,838곳의 기초 자료를 수집했고, 전문가 자문ㆍ평가를 통해 171곳을 2차 후보로 찾아냈다. 이후 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의 현장 방문과 평가를 거쳐 39곳을 추렸다.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최근 100년 동안 식민지 지배와 전쟁,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겪으면서 옛 시간의 흔적들이 빠르게 사라진 탓이다. 또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 온 점포들도 시대의 변화로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보니 오래가게 선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카페가 즐비한 명동에서 65년째 옛 모습 그대로 다방을 운영중인 ‘왕실다방’ 측은 “손님이 계속 줄어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있다”며 오래가게로 선정되는 것을 거절했다.
시는 이처럼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오래된 가게들을 오래가게라는 브랜드를 통해 관광자원화한다는 계획이다. 시는 앞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제작하고 지도와 책, 영상을 제작ㆍ배포해 오래가게 알리기에 적극 활용한다. 이달 중순부터는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은 동영상 커뮤니케이션 앱 ‘스노우(SNOW)’를 통해 오래가게 필터를 제공한다. 필터를 켜고 촬영하면 마치 오래가게에 온 것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서비스다.
안준호 시 관광체육국장은 “자유여행객이 늘어나는 요즘, 화려한 서울 도시 이면에 간직한 오래가게만의 정서와 이야기를 매력 있고 독특한 관광 콘텐츠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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