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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말폭탄에 얼어붙은 유엔 총회장…북한 대사는 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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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말폭탄에 얼어붙은 유엔 총회장…북한 대사는 보이콧

입력
2017.09.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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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 연설 동안 박수 5회뿐

“유엔을 전쟁선포 무대로 이용”

회의장 맨 앞줄의 北 대표단

트럼프 연단 오르자 자리 떠

NYT “美 우선주의에 불편한 기류”

WP “깡패 두목 같은 연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트럼프는 새로운 히틀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정권을 겨냥해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완전 파괴’, ‘자살 임무’, ‘불량정권’ 등 초강경 비난 발언을 쏟아내는 동안 회의장 구석구석에선 서늘한 긴장감이 감지됐다. 40분을 넘는 연설 동안 박수 갈채는 고작 다섯 번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경색된 분위기였다. 북한 관련 발언에 소요된 5분여 동안엔 그마저도 전무했다. 미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나 동맹이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 북한을 완전 파괴할 것이라 말할 때 다른 유엔 회의장에서 국제 외교정책을 논의하던 외교관들이 당황하면서 매우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한 유엔 외교관은 월스트리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회의장은 충격을 받은 분위기가 역력했다”며 “유엔을 전쟁 선포의 무대로 이용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박수에 후한 유엔의 외교관과 정치인들이 차갑게 응대한 모습을 뉴욕타임스(NYT)는 “연설 후 박수는 열정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연설 방송 화면에 잡힌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의 모습도 화제였다. 얼굴을 가리며 침울해하는 듯한 그의 표정이 사실상 트럼프 연설에 대한 유엔 회원국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평이 잇따랐다.

이날 유엔 총회장의 하이라이트는 북한 대표단의 ‘연설 보이콧’ 장면이었다. 유엔 총회에선 보통 대표단의 좌석이 제비뽑기로 정해지는데 운 없게도 북한 측 자리는 총회장 맨 앞줄에 위치했다. 자성남 주유엔 북한 대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트럼프 대통령의 눈을 보며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자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는 이후 미 NBC방송에 “연설을 보이콧 했다”고 말했다. 자 대사가 떠난 자리는 북한 측 실무 외교관이 대신 채웠고, 그는 얼어붙은 표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0여명의 전 세계 지도자와 외교관들을 앞에 두고 “나는 항상 미국을 최우선에 놓을 것이다”라는 말을 강조한 대목도 불편한 기류를 만들어냈다. ‘주권(Sovereign)’이라는 표현을 무려 19번이나 사용하면서 노골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내비쳤다는 분석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강조하는 말을 할 때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고 했다.

예상 수위를 뛰어 넘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에 외신 반응은 비판 일색이다. 트럼프가 북한은 물론 이란에 대해선 “거짓된 민주주의를 가장한 부패한 독재정권”이라고, 베네수엘라에 대해선 “독재 통치를 계속하면 추가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자 “‘깡패 두목(mob boss)’같은 연설(워싱턴포스트)”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마저 나왔다. 신문은 “영화 ‘언터처블’에서 야구방망이만 들지 않은 알카포네 역의 로버트 드니로를 떠올리면 된다”며 “김정은은 물론 2,500만명의 북한 주민도 ‘절멸’시키겠다는 신호”라고 맹비난했다.

언론은 트럼프의 연설이 정제되지 않은 트위터와 달리 정부 차원에서 조율을 거쳐 완성된, 준비된 발언이라는 점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WSJ는 “트럼프는 이념이 아니라 결과로 우리를 이끌겠다고 선언했다”며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사고가 외교 기조도 지배할 것으로 내다봤다. 발리 나스르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원장은 NYT에 “독재건 민주주의건 다른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우리가 싫어하는 국가의 주권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며 “주권에 대한 트럼프의 정의는 매우 좁은 국내용 시각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ㆍ외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가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지칭한 것과 관련 “북한 지도자가 변덕스럽다는 점을 알고 있으나 이런 식의 표현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그저 비난하고 위협만 하면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국가들을 적대시하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불량국가 발언을 문제 삼았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트럼프가 메가폰으로 “미국 우선”을 외치는 만평을 통해 연설을 비꼬았고,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아예 “트럼프는 새로운 히틀러”라고 묘사했다.

트럼프의 연설에 미소 지은 나라는 일본과 이스라엘 정도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일본 관방 부장관은 트럼프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언급하자 “납치 사안을 중시하는 정부의 이해가 잘 전달된 결과”라며 환영했다. 또 총회에 직접 참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가 연설 도중 적대국인 이란을 비난하는 대목에서 밝게 웃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편 트럼프는 “미국이나 동맹이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 북한을 완전 파괴할 것”, “항상 미국을 최우선에 놓을 것” 등 연설에서 사용한 표현들을 이후 트위터에도 그대로 올렸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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