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정부는 이를 성대히 기념하기 위해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4월 13일로 되어 있는 임정수립 기념일은 잘못이므로 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 1989년 정부는 학계 의견에 따라 임정수립 기념일을 이렇게 정했으나 그 후 학계에서 4월 11일설이 제기돼 논란이 이어져왔다.
2006년 10월 30일 한국근현대사학회 주최로 열린 관련 학술세미나에서 4월 13일설을 주장해온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주로 1932년 상하이 일본총영사관 경찰이 만든 ‘조선민족운동연감’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4월 11일은 임시정부의 수립 절차가 완료된 날일 뿐 아니라 이후 임시정부에서 이날 기념식을 거행했다”고 4월 11일설을 제기했다. 백범 김구가 주도한 한국국민당 기관지 ‘한민‘(1938년 4월 3일자), 중국신문 ‘대공보‘(42년 4월 11일자), ‘신화일보‘(42년 4월 11일자) 등의 임정 기념식 기사 등이 근거였다. 이후 논의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이 교수의 4월 13일설의 근거가 된 ‘조선민족운동연감‘은 1932년 윤봉길 의거 당시 상하이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이 상하이 교민단 사무소에서 압수한 임시정부 관련 문서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이 책은 1919년 4월 13일조에서 ‘내외에 독립정부 성립을 선언하고, 김규식의 외무총장 겸 전권대사 신임장을 발송함’이라고 적었다. ‘조선민족운동연감’의 4월 13일조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안승원, 김병조, 김구 등이 상하이에 왔다는 것 2)국내 각지에서 사람들이 상하이로 찾아와 그 수가 1,000여 명에 달해 임시의정원법을 제정하여 각 지방별로 의정원 의원을 선출하였다는 것 (3)개편된 임시정부 각 부 위원의 명단 (4)베르사유 평화회의와 국내외 인민에게 정부 성립을 선언하고 김규식에게 외무총장 겸 전권대사의 신임장을 발송하였다는 것 등이다.
이 부분은 임정에서 펴낸 ‘한일관계사 사료집’ 제4권 제3장 ‘독립운동에 관한 약사’의 4월 13일조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사료집의 4월 13일조 기록 가운데 (1)만 4월 13일에 있었던 일이었다. 임시의정원 회의록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 기사록’을 보면 (2)는 4월 25일과 30일에 있었던 일이며, (3)과 (4)는 4월 22일 밤에 결정된 일로 나온다. 상하이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은 위와 같은 구체적 정황을 잘 모르고, 4월 13일에 ‘정부 수립이 선언’되었다고 쓴 것이다.
4월 11일설을 주장한 한 교수가 인용한 중국측 ‘신화일보’ 1942년 4월 12일자는 ‘한국임시정부는 11일 오전 8시 성립 23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기념식에는 임시정부의 전체 수장 및 중경에 거주하고 있는 한교 등 100여명이 참석하였다’고 썼다. 1945년 4월 11일의 ‘임시의정원 회의 속기록’도 ‘대한민국 27년 4월 11일 상오 10시에 중국 중경시의 정부 대례당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38차 의회 개원식을 거행하다. 이날이 역시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 성립 제26주 기념일이므로 의회 개원식과 정부 성립 기념식을 합병 거행하다’고 4월 11일 임정성립 기념식을 가졌다고 기록했다. 그 밖에도 여러 관련 기록이 있다.
이처럼 임정 자체의 여러 기록, 그리고 각종 신문 기사들은 임정 스스로 4월 11일에 임정수립 기념식을 열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임정 수립일은 4월 11일로 보는 게 맞다. 대한민국 정부가 임정수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잘못된 일본 경찰 자료에 의거해 4월 13일에 연다면 망신스러운 일이다. 임정 수립 기념일을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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