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보다 생수 값이 훨씬 더 들어갑니다.”
경북 군위군 산성면 운산리 주민 이정식(69)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아내와 둘이 살면서 드는 쌀값이 하루 1,500원꼴인데 생수는 한 병에 900원인 2L짜리 3∼4병을 소비해 2700~3600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의 집 주방 옆에는 생수박스가 잔뜩 쌓여 있다. 마시기도 하지만 쌀을 씻거나 쌈을 싸먹는 채소를 헹굴 때도 쓴다. 이씨는 “정수기도 있지만 믿을 수 없어 아예 안전한 생수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군위군 주민들이 때아닌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다. 수돗물 불안이 확산되면서 2~3년 전부터 생수에 의존하는 주민이 크게 늘었다. 수돗물에 석회질(탄산칼슘) 함량이 높아 이를 장기간 마실 경우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해서다.
이는 군위군 산성면과 고로면 등 정수장을 거친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곳에서 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군내 7개 읍면 중 4개면 지역 주민들이 특히 불안해 하고 있다.
소보면 위성3리의 은병표(50)씨는 하루 평균 2L짜리 생수 6병을 소비한다. 한 달에 물 값만 15만원이 든다. 먹는 물은 물론 밥 짓고 국 끓이고 커피를 탈 때도 생수를 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지하수를 이용한다. 상수도 시설이 없다 보니 23가구 50여 주민들은 집집마다 우물 격인 개인 관정을 뚫었다. 은씨는 “물을 끓이면 바닥에 흰 앙금이 쌓일 정도”라며 “관정을 지하 180m까지 뚫어도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군에 따르면 기준치를 초과한 식수를 먹는 곳은 부계 의흥 산성 고로면의 일부인 462가구 860명. 산성면 삼산1리의 경도(탄산칼슘 함유량)는 563㎎/L이었다. 이는 기준치 300㎎/L 이하를 크게 웃도는 수치로 군이 간이상수도와 읍내에 공급되는 수돗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관정을 이용하는 소규모 마을이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대상 가구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간이상수도 시설이 된 곳 주민들도 “모내기 철에는 수돗물에서 흙 냄새가 날 정도”라며 “마을 물탱크에서 간단한 소독을 할 뿐이어서 석회성분을 과다 섭취하지 않는지 불안하다”고 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석회성분이 배관에 끼어 보일러가 고장 나기 일쑤다. 김광호(71ㆍ산성면 화전리)씨는 “10년 정도 쓸 수 있는 보일러를 우리 지역에서는 3~4년이면 교체해야 한다”며 “우리 집 보일러 관도 90% 이상 막혀 바꿔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군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최수한 군위군상하수도 사업소장은 “산성면의 경우 탄산칼슘 성분 탓인지 치아가 좋지 않은 사람이 많다”며 “주민들이 요청할 경우 석회질 여과막을 설치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석회질 여과막은 설치비 2,000만원을 군에서 대고 전기요금을 비롯한 유지관리비는 주민들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필터는 일년에 한 번씩 340만원을 들여 군에서 교체해주고 있다. 최 소장은 “모든 식수원에 여과막을 설치할 경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면서 “현재 간이상수도 13곳에 여과막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날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노후 수도관 교체와 신규 수도관 설치비 300억원이 내년 정부 예산에 반영되지 않아서다. 현재 공정률 62%인 통합취정수장이 내년 말까지 완공돼도 수돗물을 공급할 관로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군은 2018년까지 관로 설치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신순식 군위군 부군수는 “기획재정부 심사에서 예산이 전액 삭감돼 답답하다”며 “국회 심의과정에 반드시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성우기자 ksw161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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