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쯤 휘발유 비축 명령 내린 듯
연일 자력갱생 강조로 결속 유도
대북 유류 공급 제한이 포함된 신규 대북 제재 결의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평양 기름값에는 변동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약발이 가시화하지는 않는 모양새다.
19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평양 주재 서방 외교관은 이메일을 통해 “지역별로 기름값 차이가 있고 평양 내에서도 주유소마다 가격 차이가 조금씩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평양 내 주유소 가격은 핵실험 전후 변동이 없다”고 전했다. 이 외교관에 따르면 평양 주유소에서 현재 15㎏ 단위로 팔리는 휘발유 쿠폰은 장당 24유로(29달러), 디젤유 쿠폰은 25.5유로(31달러)다. 각각 1㎏에 1.6유로(1.92달러)와 1.7유로(2.04달러)였던 지난달 12일 휘발유ㆍ경유 가격과 차이가 없다. 이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안보리 추가 제재로 북한에서 기름값이 치솟고 있다는 일부 보도 내용과 상이하다고 VOA는 지적했다.
이런 기름값 안정 현상은 북한의 대비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평양 기름값이 실제 오르지 않았다면 중국의 유류 제한 등 대북 제재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VOA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각각 ㎏당 0.75유로(0.9달러), 0.84유로(1.01달러) 선이었던 평양 주유소의 휘발유ㆍ경유 가격이 4월 20일이 되자 ㎏당 1.5유로(1.8달러), 1.4유로(1.68달러)로 급등했다. 당시 이미 추가 제재 효과가 가격에 반영돼 있었다는 의미다.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북한 정권이 휘발유 비축 명령을 내려 시장 유통을 제한한 시기가 4월쯤이다. 신문은 이때부터 중국 당국이 사실상 석유 수출 제한에 나섰다며 이를 통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핵ㆍ미사일 개발로 폭주하는 김정은 정권에 경고 신호를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북한은 연일 주민들을 독려하며 내부 결속도 강화하는 모습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 ‘자력갱생 대진군으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승리의 활로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1면 사설에서 “우리에 대한 제재ㆍ압살 공세는 그 규모와 내용, 강도와 지속성에 있어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파렴치하고 야만적이며 위험천만한 민족 멸살 책동”이라며 “지금이야말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100% 자급자족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17일에도 “반공화국 제재ㆍ압박 소동을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계속 풍비박산 낼 것”이라며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설령 기름값이 폭등하더라고 북한의 동요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날 “북한에서 주유하려고 길게 줄을 서고 있다”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언급이 무지의 소산이라고 혹평하며, 북한 주민 대부분은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보리는 11일(현지시간) 대북 유류 공급을 30%가량 차단하고 북한산 섬유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인 새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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