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범죄 혐의 소명”… 원세훈 등 윗선 수사 속도낼 듯
검찰 “외부조력자는 무조건 구속 안 된다는 건가” 불만
이명박(MB) 정부 시절 민간인 댓글부대를 총괄 운영하며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를 받는 민병주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장이 구속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윗선’ 개입을 밝혀나가는 검찰 수사에는 큰 차질이 없게 됐지만, 함께 청구된 민간인 외곽팀장 등 2명의 구속영장은 기각돼 검찰은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오민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9일 민 전 단장에 대해 “범죄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되고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민 전 단장은 원 전 원장 시절인 2010~2012년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하면서 불법 선거운동과 정치개입 활동에 수십억 원을 지급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를 받는다. 2013년 원 전 원장이 기소된 공직선거법 등 위반 사건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민간인 댓글부대 운영 및 활동사실이 없었다고 위증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앞선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국정원 적폐청산 태크스포스(TF) 조사로 확인된 외곽팀 운영지원 대목을 대체로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전 단장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원 전 원장 등 윗선과의 공모관계를 추적해나갈 계획이다.
반면, 민 전 단장과 함께 청구된 외곽팀장과 전직 국정원 직원의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오 부장판사는 외곽팀 활동실적을 허위로 조작해 활동비 수천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ㆍ사문서위조 및 행사)를 받는 전 심리전단 직원 문모(49)씨에 대해 “피의자가 범행을 인정하며 구속영장 청구 이후 피해금액을 전액 공탁한 점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기각 사유를 들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정원으로부터 총 10억여원의 활동비를 받으며 불법 사이버 선거운동과 정치관여 활동을 벌인 혐의(공직선거법ㆍ국정원법 위반)를 받는 송모(60)씨에 대해선 “공무원 범죄인 이 사건 범행에서 피의자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수사진행 경과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이들의 기각을 두고 검찰 전담수사팀은 수긍이 어렵다는 반응이다. 문씨의 경우 국정원 내부의 조직적 범행에 편승한 뒤 개인 비리까지 저지른 데다, 개인 범행이 적발돼 감찰 조사를 받자 외곽팀 운영사실을 폭로하겠다고 국정원 관계자들을 협박해 죄질이 안 좋다는 것이다. 문씨는 국정원의 수사의뢰 직후 휴대폰을 해지하고 새로 개통했다가 검찰 조사 직후 다시 해지했으며, 검찰 조사를 앞두고 출국을 시도하는 등 증거인멸과 도주우려 역시 높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게다가 문씨가 활동비 수수내역 등에 관해 공범들의 진술을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송씨의 기각에 대해서도 검찰은 불만을 표출했다. 국정원에서 받은 금액이 10억원에 달하는 점 등으로 송씨 사안이 중대함에도 기각됐다는 것이다. 송씨는 2013년 국정원 수사 당시에도 외곽팀 운영사실 등이 없다고 허위 진술했으며, 이번 수사과정에서도 중요 증거를 없애고 공범들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점이 드러났는데도 법원이 기각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외부 조력자는 무슨 짓을 해도 구속이 안 된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앞서 외곽팀장으로 활동한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전ㆍ현 간부 2명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된 적이 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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