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직 노동권 공약 제자리
대리운전ㆍ택배기사 노조 신청도
서류미비 이유로 필증 발부 미뤄
국회서도 다른 노동 현안에 밀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특수형태고용근로자(특수고용근로자)의 노동권 보장이 좀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에는 지난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특수고용근로자 중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등 9개 직종에 대해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게 전부일 뿐, 노동권 보장은 아무런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여기저기서 “이러다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처럼 또 ‘희망고문’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 특수고용근로자인 보험설계사들로 구성된 보험인권리연대노동조합은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한 보험설계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해 특수고용근로자의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 보장을 촉구했다. 앞서 5일 푸르덴셜생명 본사에서 회사의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투신한 지점장 출신 양모(58세)씨는 평소 자신 뿐 아니라 보험설계사의 노동3권을 보장, 회사가 쉬운 해고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특수고용근로자인 대리운전기사와 택배기사 역시 지난달 28일과 31일 각각 고용노동부 산하 서울고용노동청에 정식으로 노조설립을 신청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제출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아직까지 노조설립 필증 발부를 미루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법외노조 상태인 택배노조 측은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굳이 법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2014년 골프장 캐디를 근로자라고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확대 해석해서라도 노조설립 필증을 교부할 수 있다”면서 “정부의 노동3권이 빈 공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한시라도 빨리 필증이 발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수고용근로자들은 그 동안 개인사업자로 분류,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때문에 노조설립 등 노동3권 보호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가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특수고용근로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고, 이어 국가인권위원회도 5월 이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근로자에 포함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면서 관련 근로자들의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정작 이에 따른 정부의 구체적인 후속 대책이 보이지 않으면서 여전히 특수고용근로자들은 노조 활동을 하기 위해선 개별 소송을 통해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인권위원회가 정부와 더불어 조속한 입법 노력을 촉구한 국회 역시 미적거리긴 마찬가지다. 20대 국회에도 근로자의 개념에 특수고용근로자들을 포함시켜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건 발의됐지만 근로시간 단축 문제 등 다른 노동현안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관련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최근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ㆍ정 협의에서도 현재 산재보험법에 9개 직종으로 규정된 특수고용근로자들의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이견으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고용근로자들의 보호 필요성은 이미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만큼 정부든 국회든 우선 가능한 것부터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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