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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고전산책] 싸움을 잘하는 자 노여워하지 않는다

입력
2017.09.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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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병기란 상서롭지 못한 기물(兵者, 不祥之器)”(‘노자’ 31장)이라고 보았다. 전쟁이란 흉사(凶事)이므로 백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통치자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야 하며, 전쟁을 일삼는 잔인한 통치자는 천하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게 평화론자인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기에 노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전쟁터를) 달리던 말을 되돌려 밭을 일구게 한다(天下有道, 卻走馬以糞)”(46장)는 말로 전쟁의 불필요성을 거론했다. 이 구절에 대한 한비자의 풀이를 보면 이렇다. “도를 터득한 군주는 밖으로는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지 않고 안으로는 백성들에게 덕과 은혜를 펼친다. 밖으로 이웃하는 상대 나라에 원한을 맺지 않는다는 것은 제후들을 예의로 대우한다는 것이고, 안으로 백성들에게 덕과 은혜를 편다는 것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근본에 힘쓴다는 것이다. 제후들을 예의로 대우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일이 드물고, 백성들을 다스리면서 근본에 힘쓰면 음란함과 사치가 그칠 것이다.”(‘한비자’ ‘유로(喩老)’편)

영명한 군주는 전투에서 말을 부려 질주할 일이 없게 되고 말을 가지고 농업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도가 난무하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전쟁은 필요악이었다. 탐욕과 위선의 결과물이면서도 나라는 생존과 패망의 갈림길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자는 전쟁을 하려면 자기 과신이라든지 분노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부쟁지덕’, 즉 다툼이 없는 덕을 이렇게 강조했다. “장수 노릇을 잘하는 자는 무용을 뽐내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노여워하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자는 (그와) 더불어 (싸우지) 않고, 사람을 잘 부리는 자는 그보다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한다(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 是謂不爭之德)”(68장).

뭔가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 허세를 부리므로 가능하면 물러남을 원칙으로 하되,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해야지 굳이 정면으로 충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부쟁지덕’이란 전쟁을 치르면 이겼다고 해서 결코 이긴 게 아니라는 노자의 인식에서 나왔다. 이런 사례는 ‘사기’ ‘장의열전’에도 나온다. 장의의 말을 빌려 말한다면,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쳐들어오자 조나라는 번오(番吾)라는 성 아래에서 진나라를 두 번이나 싸워서 이겼으나, 문제는 그 전쟁터가 조나라 땅이었다. 전쟁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조나라는 다 파괴되었고 수도인 한단(邯鄲)도 겨우 남겨져 있을 뿐이었으니, 승리는 그야말로 허울이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약소국 노(魯)나라가 동방의 강국 제(齊)나라와 전쟁을 세 번이나 치러 운 좋게도 세 번 다 이겼다. 많은 사람들이 노나라가 대단하다고 했고 노나라 왕도 승리감에 잠시 우쭐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약소국인 노나라만 망하고 강국 제나라는 건재해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 살아남았다.

피전(避戰)의 관점을 견지한 노자는 “나는 감히 주체가 되기보다는 객체가 되어야 하고, 감히 한 치를 나아가기보다는 한 자를 물러서야 한다(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69장)고 하면서 스스로 주도적 입장에서 전쟁을 벌이려 하지 말고 수비하는 자세로 부득이 싸움에 임하듯 하라는 논리를 펼친다. 대열을 이루지 않은 듯 대열을 이루고,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무기가 없는 듯이 처신하라는 말이다. 화근은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고 적을 가볍게 여기는 거야말로 패착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는 게 노자의 논지다. 그러기에 노자는 “싸우지 않으면서 잘 이기는(不爭而善勝)”(73장) 전략을 강조했으니, “성인은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에서 아무도 그와 다툴 수 없다(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66장)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자가 끝까지 전쟁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전쟁이라면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과는 다른 변칙의 전술이 중요하다는 관점에 입각하여 “올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함으로 용병한다(以正治國, 以奇用兵)”(57장)고 강조했다. 즉 ‘기(奇)’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저 눈에 보이는 뻔한 전략이 아니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지지 않는 전쟁,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 위한 전술이 필요하다는 논지다. 노자의 이런 고도의 계산된 책략은 손자로부터 마오쩌둥에 이르는 명장들의 용병 전략으로 적지 않게 자리 잡았다.

최근 북핵이나 사드 문제 등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식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전략적 부재도 적잖아 보인다. 고수는 자신의 패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주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고 상대편 패를 다 살펴보고 나서 움직인다. 감추고 있어야 할 사안을 굳이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상대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돌이키기 힘든 협상력의 부재로 치달을 소지가 있는 것들을 구태여 다 보여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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